[분석] 태국 불교의 승왕 추대 파동과 '국교화' 운동의 광기- 3편

국제연대 - 크세 연구회 | 2016. 제1

불교의 국교화 운동과 불교 민족주의

승왕 추대 파동은 '불교의 국교화 운동'이 부상하는 흐름과 겹쳐지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월16일 시위 당시, 승왕 지지 단체인 '태국 승가재가동맹'(SBAT)은 "승왕의 조속한 인준" 뿐만 아니라 "불교의 국교화"도 함께 요구했다. 불교 국교화 운동에 부정적인 이들은 군사정권이 국교화를 통해 반대자를 탄압하는 데 이용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이러한 주장을 군부와 대척점에 선 승왕 지지파가 외쳤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 국교화'의 의제가 태국 정치의 양대 진영 중 어느 한쪽에서만 우세한 주장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 불교의 국교화 주장을 선도하는 단체는 '국교로서의 불교 진흥회'(Committee to Promote Buddhism as the State Religion: CPBSR)이다. 그러나 CPBSR이 태국 정치의 양대 진영 중 어느 정파에 더 친화적 성향을 지녔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아마도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불교도인 태국에서, 국교화 주장은 양대 진영 모두에서 일정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교의 국교화' 주장이 특히 무슬림에 대한 경계심에서 기인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국제적인 인권감시 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태국지부의 수나이 파숙(Sunai Phasuk) 씨는 <로이터 통신>(Reuters)과의 회견에서 "[태국 사회에서] 무슬림에 대한 의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통상 2가지 요소가 언급된다. 하나는 2004년 이후 태국 최남단 3개 도에만 국한해서 진행 중인 무슬림 무장반군 소요사태로서, 지난 10년간 6천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됐다. 무슬림 소용사태는 무슬림들이 중앙정부로부터 소외와 차별을 받는다는 정서에서 출발했다. 여러 반군 단체들은 그 실체가 아직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태국 정부가 누구를 협상 대상자로 삼아야 할지도 모호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 지방 주류인구인 말레이계 무슬림들의 자치권 요구는 모든 반군의 공통점이다. 반군들은 주로 군인, 교사, 공무원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데, 불교 승려들 역시 태국의 체제적 상징으로 보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다른 하나는 이웃국가인 미얀마에서 반-무슬림 불교 근본주의가 급성장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미얀마에서는 특히 위라투(Wirathu: 1968년생)라는 저명 극우 승려가 '969 운동'이라는 급진적 버마 민족주의 캠페인을 벌이면서, 군사정부의 묵인 하에 범-무슬림 인구에 대한 학살, 방화, 성폭행 등이 자행됐다. 특히 미얀마 서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는 로힝야족(Rohingya people)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해, 동남아시아 바다에 지중해 난민 사태보다 규모가 큰 보트피플 물결과 국제 인신매매 파동을 출현시켰다. '969운동'의 흐름은 보다 체계적인 단체 '마바타'(Ma Ba Tha: 인종종교수호위원회)로 이어졌고, 정부로 하여금 친-불교 반-무슬림 법안을 제정토록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태국 불교계에도 최근 미얀마의 사례를 모방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고, 미얀마의 불교 근본주의자들과 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참조: 미얀마 극우 승려들은 스리랑카 극우 승려들과 빈번한 교류를 갖고 있는데, 스리랑카 극우 승려들 역시 극단적인 반-무슬림 정서를 갖고 있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태국 불교의 국교화 추진 움직임이 단순히 반-무슬림 정서에서만 추동된 것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의견들도 제시되고 있다. 태국의 헌법학자 켐텅 통사꾼랑루웡(Khemthong Tonsakulrungruang)은 호주국립대학(ANU) 발행 온라인 저널 <뉴 만달라>(New Mandala)에 기고한 칼럼(2016-1-15)에서, 국교화 움직임이 불교 내부의 모순을 손쉬운 방법으로 타개하려는 시도로 진단했다.

"태국 불교는 단 한번도 현대화 혹은 이성적 개혁을 이룬 적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태국 사회에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절대화된 상태이고, 그러한 정설에 대한 도전은 거부되며, 불교 철학도 낡은 사상이 됐다. 주지승들이 축적한 부와 승려들의 저지른 비행들 때문에 '승가'의 약점에 대한 비판도 증가 중이다. 불교는 보다 젊고 비판적인 세대에게 호소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중 략) 태국 불교의 약화와 권력 쟁취의 야망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된 국가적 진흙탕 싸움에서 출현한 징후이다. 불교는 너무 망가졌고, 그 결과 보다 다원화된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만큼 약화됐다. 이제 그들은 국가 권력에서 궁극적인 해법을 찾으려 한다. (중 략) 불행하게도 불교 정치가 태국을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만들고 있다."

<사우스이스트 아시아 글로브>(Southeast Asia Globe)의 분석(2016-2-11)은 다양한 사회적 차원의 요인들을 전하고 있다. 영국 '리즈 대학'(University of Leeds) 정치학 교수 던칸 맥카고(Duncan McCargo)는 최근의 국교화 움직임이 "태국이 절망적인 양극화 정치로부터 탈출할 출구가 없다는 정서"에서 기인한 "집단적인 민족적 불안"의 증가로 파악했다. 그의 이 같은 진단은 동남아 전문 저명 언론인 토마스 풀러(Thomas Fuller)가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에 기고한 심층 탐방 기사(2015-11-29) 내용과도 일치한다. 풀러는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일년 반 동안 진행된 군사정권의 경제정책 실패 현장을 취재하여 "타격받지 않는 태국"(Teflon Thailand), 즉 "정정이 불안해도 태국 경제는 괜찮을 것"이란 오랜 신화가 붕괴되면서 발생한 사회적 좌절감을 생생하게 보고했다.

호주 '애들레이드 대학'(University of Adelaide) 인류학 교수 제임스 태일러(James Taylor)는 태국의 도시인들 사이에서 '시골스런 것'(country things)에 대한 향수가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도시 중산층 태국인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시골에 대한 향수를 갖고, 전통의상 착용이나 근교의 별장 구입 등 전원생활을 모방하는 풍조가 생겨났는데, 특히 과거 농촌사회에서 공동체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불교의 전통적 위상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중문화의 '태국판 7080 열풍'과 더불어, 좌절된 "자신감"을 소위 "태국다움(Thai-ness)의 징표"인 불교에 집착함으로써 얻고자 한다는 것이다.

한편, 태국인들의 좌절감이 사회 심리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만 한다. 태국 불교는 여타 남방불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정령신앙과 각종 미신, 흑마술에 기반을 둔 주술 등 다양한 토착신앙 및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강력한 기복적 성격을 갖고 있다. 가령 '삭얀'(sak yant, สักยันต์)이라 불리는 전통 문신, 붓다나 고승의 초상화를 삽입해 제작한 '프라 크릉'(พระเครื่อง)이라 불리는 호부(호신용 목걸이), 전통적 기법의 부적 등에 태국인들의 심리적 의존성은 매우 강하며, 이는 상류층이나 고학력 신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영험한" 부적이나 문신을 새기거나 예지력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승려나 도인에게도 '아짠'(ajahn: 선생님, 범어 '아짜리야'의 태국식 발음)이란 호칭이 사용될 정도이다. 승려들과 사찰들은 시주금과 성지순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각종 주술적 요소들 및 고승들의 행적을 우상화하고 상업화한다.

(참조: 상좌부 불교가 전파되기 전인 5~13세기의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인도로부터 직접 수입된 힌두교와 대승불교가 정착됐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실제의 사찰 문화에는 미륵신앙이나 보살사상도 발견되며, 후대에는 화교들의 이주와 더불어 포대화상이나 관음신앙도 대중성을 얻었다.)

이러한 주술적 요인들이 사회적 좌절감과 결합하면 광기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최근 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반려인형 '룩텝'(luk thep: 천사 아기) 신드롬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반-무슬림 정서와 함께 태국의 불교문화가 지닌 이러한 전근대성은 '불교의 국교화' 운동의 또 다른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몇년 간 불거진 마약, 사치, 성매매 등 태국 승려들의 각종 비행과 물신화 풍조는 대중들로 하여금 근본주의 움직임에 친화적으로 만들 우려도 존재한다.

2014년 5월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기존의 헌법(2007년 헌법)을 폐지시켰다. 그렇지만 이때 폐지된 헌법도 실은 탁신 정권을 최초로 실각시켰던 2006년 9월의 쿠데타 후 군사정권 감독 하에 제정된 것으로서,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요소가 많은 헌법이었다. 따라서 향후 등장할 신헌법은 <2007년 헌법>보다도 더욱 퇴행적 성격을 지니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 사이 군정이 임명한 국가 입법회의(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NLA)와 '헌법초안위원회'(Constitution Drafting Committee: CDC)가 새로운 헌법을 한번 초안했지만, 역시 군사정권이 구성한 '국가개혁회의'(National Reform Council: NRC)가 작년 9월 CDC 작성 개헌안을 부결시키면서 정상적인 정치일정의 복원을 다시 한번 무기한 연기시켰다.

부결된 헌법안은 "전문가들"과 더불어 군부의 고위 장성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국가적 위기" 때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상원을 부분적으로만 선출직 기구로 만드는 조항도 있어서 많은 이들로부터 비민주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후, 다시금 헌법 초안을 위한 새로운 CDC가 설치됐고, 이 기구는 4월 중으로 새로운 헌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 경우 금년 7월 중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거칠 것이고, 정상적이고도 민주적인 총선은 빨라야 2017년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만일 군사정권이 제시하는 신헌법이 기존의 그 어떤 헌법안보다 퇴행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면, 경제정책 실패와 더불어 군정 및 신헌법 지지율은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불교의 국교화' 운동을 주창하는 세력은 바로 그러한 허점을 파고들어, 새로운 헌법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계기를 찾고 있다.

절대왕정을 붕괴시킨 군사 쿠데타 '1932년 혁명' 후 제정된 헌법을 시작으로, 태국에서는 그 동안 18차례 개헌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불교 및 여타 종교들을 진흥시킬 의무"만을 명문화했을 뿐, 불교를 국가의 공식종교로 지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불교는 비공식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각종 헌법들에서 보호받았고, 헌법 조문 내에도 불교 및 불교적 이념의 언급이 많이 나타난다. 또한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의례와 관행들을 통해 "사실상의 국교"로서 그 지위를 누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 내의 강경파들은 대내적, 대외적 불안감을 '국교화'를 통해 타개하려 시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웃국가인 미얀마에서 반-무슬림 불교 근본주의가 급성장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미얀마에서는 특히 위라투(Wirathu: 1968년생)라는 저명 극우 승려가 '969 운동'이라는 급진적 버마 민족주의 캠페인을 벌이면서, 군사정부의 묵인 하에 범-무슬림 인구에 대한 학살, 방화, 성폭행 등이 자행됐다. 특히 미얀마 서부 해안지대에 거주하는 로힝야족(Rohingya people)에 대한 박해는 극에 달해, 동남아시아 바다에 지중해 난민 사태보다 규모가 큰 보트피플 물결과 국제 인신매매 파동을 출현시켰다. '969운동'의 흐름은 보다 체계적인 단체 '마바타'(Ma Ba Tha: 인종종교수호위원회)로 이어졌고, 정부로 하여금 친-불교 반-무슬림 법안을 제정토록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태국 불교계에도 최근 미얀마의 사례를 모방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고, 미얀마의 불교 근본주의자들과 교류도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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