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태국 불교의 승왕 추대 파동과 '국교화' 운동의 광기- 4편

국제연대 - 크세 연구회 | 2016. 제1

좌절한 양극화 사회의 기성 종교가 벌이는 현실 정치의 대리전

글/편집 : 크세 연구회
('크세 연구회'는 2009년 결성된 동남아시아 전문 온라인 연구공동체이다.)

되살아나는 불씨와 왕위계승전쟁 

2014년 5월 쿠데타 후 태국 사회의 역동성은 떨어졌지만, 군정의 공포정치 하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왔다. 강력한 세력을 지닌 반-군부 반-기득권 친-탁신 세력의 움직임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지만 이제 그 고요가 깨지려 하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최근 들어 국제적인 언론들과 연속적인 회견을 갖거나, 미국을 방문해 강연하면서 군정의 신헌법 제정 계획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이라며 여론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에 부응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친-탁신 진영의 군부 원로이자 전직 총리이기도 한 차왈릿 용짜이윳(Chavalit Yongchaiyudh: 1932년생) 장군은 3월13일(일)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태국의 갈등상황을 끝낼 '제3의 세력'을 준비 중"이란 폭탄선언을 했다. 그는 "100만명의 소수민족과 1천만명의 빈곤층에서 유사시 동원할 20~30만명의 병력을 조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병력이 "비무장"이지만 갈등과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민심을 추스르는 데 동원될 것이라면서, 군정이 협상을 해온다면 요청에 응할 것이라며 압박했다. 태국 군 전체 병력이 20여만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차왈릿 장군이 제시한 병력 규모는 엄청난 것이다. 또한 친-탁신 진영 내에서 차왈릿 전 총리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이 탁신과 조율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군사정권은 탁신의 발언 소식을 "개가 사람을 문 뉴스"라거나, 차왈릿 장군을 "한때 영화를 누렸던 절간 앞에 앉은 늙은 개"라는 식으로 비하하며 역공을 펼치고 있지만, 태국 정치가 다시금 꿈틀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탁신 진영의 이 같은 움직임은 새로운 총선을 2017년 이후 실시하려는 군정의 정치일정을 순순히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태국의 양대 진영이 벌이는 정치적 갈등은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 지배체제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주의 문화가 맞부딪히는 세계관의 충돌인 동시에, 태국 사회를 오랜 기간 지배해온 수구적 기득권 세력과 신흥재벌 및 노동자/농민 연합세력 사이의 사회경제적 투쟁이기도 하다. 또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북부지방과 고무농사 및 수산업에 기반을 둔 남부지방 사이의 지역 대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태국의 정치 갈등은 왕위계승전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비록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선동술에서 벤치마킹한 우상화 정책과 가혹한 왕실모독법을 동원한 여론통제의 덕분이긴 하지만, 그 동안 거의 신적인 추앙을 받아오던 푸미폰 국왕이 2009년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현재는 사실상 금치산자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태국은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국이지만, 모든 권위가 국왕에게서 나오는 유사-절대왕정 국가이다. 더욱이 왕실은 최대 기업집단 '시암시멘트 그룹'(SCG)을 비롯하여, 막대한 부동산과 현금성 자산들을 보유한 태국 최대 부호이기도 하다. 왕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는 사실상 태국 경제 전반으로 이어지며, 그와 관련된 인적 네트워크와 정치권력, 특히 군부 내 이권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거의 70년간 재위해온 푸미폰 국왕이 사망할 경우, 태국의 모든 권력관계들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국왕의 사망과 최소 일년 이상의 장례식, 그리고 새로운 국왕의 즉위과정은 태국사회 미래 권력의 물적, 정신적 토대를 재결정하는 과정이 될 것이고, 이 기간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가 현재 태국 정치가 당면한 과제이다. 지난 수십년간 왕실 권력을 실질적으로 관리했던 사람은 시리낏(Sirikit: 1932년생) 왕후였고, 현 군부의 주류(제21연대 파벌) 역시 그녀의 후원 하에 성장했다. 하지만 왕후 역시 2012년 뇌졸증으로 쓰러진 후 푸미폰 국왕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태국의 기득권 세력이 탁신을 반대했던 커다란 원인 중 하나는 탁신과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1952년생) 왕세자의 유착 때문이었다.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젊은 시절부터 여성편력과 기행을 일삼아왔고, 예측불가의 폭력성도 보여줬다. 현 왕조인 '짜끄리 왕조'(Chakri dynasty)에는 개국 초기부터 "라마 9세로 왕조의 수명이 다할 것"이란 예언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푸미폰 국왕이 바로 라마 9세이고, 만일 와치라롱꼰 왕세자가 즉위한다면 그는 라마 10세가 된다. 태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모순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이 같은 예언은 주술적 힘을 신봉하는 태국 국민들에게 "종말론적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앤드류 맥그레거 마샬(Andrew MacGregor Marshall)은 2013년에 공개한 자신의 논문 <"깔리육", 태국의 광기시대 : 왕위계승과 정치위기>(กลียุค — Thailand’s Era of Insanity)를 통해 이 시대 태국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물론 그의 논문과 이후 발행된 단행본은 태국 최대의 금서가 됐고, 마샬 역시 태국의 일급 수배자로 등록됐다.

(참조: 태국 정치 연구의 최대 난점 중 하나는 왕실모독법의 영향으로 정보의 부족 및 진실을 말해주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폭로된 미 대사관 외교전문들을 철저히 분석한 앤드류 마샬의 연구는 태국 정치에 관한 그 이전의 대부분 연구들을 거의 무가치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마샬의 논문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태국의 기득권 세력은 지난 수십년간 왕세자의 등극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사정권이 주도하는 행사들을 살펴보면, 태국 군부와 기득권 세력은 왕세자와 타협을 하고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탁신 진영의 반격은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태국 불교의 정치화, 그 뿌리깊은 전통

승왕 추대를 둘러싼 갈등이 현실 정치의 완벽한 대리전이란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태국 불교의 정치화는 비단 최근의 경향만은 아니다. 태국 사회에서 '불교와 정치의 관계'에 관한 담론이나 연구는 금기시되는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태국 불교의 정치화는 유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근대 이전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신왕'(deva-raja, 神王) 사상을 통해 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기여했고, 봉건체제의 일부로서 특히 기초 교육 부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태국 승단이 보다 체계적으로 국가적 통제 하에 들어간 것은 몽꿋(Mongkut, 라마 4세: 1804~1868, [재위] 1851~1868) 국왕의 시대였다. 몽꿋 국왕은 즉위 전 27년간 승려였고 저명한 불교학자로서 불교의 개혁에도 노력했지만, 승단의 행정조직을 지방 단위까지 확대하면서 중앙집권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흐름은 쭐라롱꼰(Chulalongkorn, 라마 5세: 1853~1910, [재위] 1868~1910) 국왕 시대인 1902년에 최초의 <승단법>(Sangha Act)이 제정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 승단의 제도적 형식이 완성됐다. 승단의 근대화는 국가권력에 이념적, 영적 근거를 제공하는 대신,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고 승려들의 사회적 특권을 보장받는 관계를 더욱 공식화한 것이다.

일부 전통적인 태국 승려들이 보다 본격적인 정치 승려로 탈바꿈한 것은 1932년 혁명 이후의 일이다. 이후 태국이 19회에 달하는 쿠데타를 겪을 때마다 새로운 실세 정치인들이 탄생했고, 그러한 정치인들과 유착을 강화하는 승려들도 등장했다. 특히 공산 반군이 활동했던 1970년대 냉전기에는 불교계 내에서도 이념투쟁이 극에 달했고, 지도급 정치 승려들도 탄생했다. '쭐라롱꼰 대학'(Chulalongkorn University) 정치학 교수였던 솜분 숙삼란(Somboon Suksamran)이 1982년에 출판한 <태국 불교와 정치:  태국 승단 내부의 사회정치적 변화와 정치적 행동주의 연구>(Buddhism and Politics in Thailand: A Study of Sociopolitical Change and Political Activism in the Thai Sangha)는 방대한 문헌자료와 대면 인터뷰를 통해 태국 승단의 정치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 보기 드문 연구에 속한다. 특히 1970년대 승단 내부의 이념투쟁에서 "공산주의자를 죽이는 것은 악업이 아니다"라는 구호까지 등장하는 데 이르면, 최근 태국 불교계에 나타난 정치적 광기의 모습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란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태국 정국은 다시금 불확실성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중인 승왕 추대 파동은 그 최종 결과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불교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교의 국교화' 주장은 사태의 전개에 더욱 큰 안개를 드리우며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중이다. 다만, "국가 종교(불교) 국왕"을 국가 구호로 내세우는 태국에서, 정치가 동요하면 종교도 동요할 것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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