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땅과 스님들-<1>강수린 위원장과 박연폭포

사회정의평화활동 -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 2016. 제4

 

 <편집자 주> 2000년대부터 북한을 자주 왕래했던 분들조차도 아직, 또 우리들이 곧잘 하는 말들 속에서 “진짜, 북한 스님들이 있어요”, “우리처럼 수행하고 있나요”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에 대해 자기식대로 해석하거나 아니면 관성화된 생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북한에도 종교에 대한 행위들이 정초나 특별할 경우에 일어나고 있다고 단순히 생각만 해도 이런 입장은 달라질 수 있다. 종교는 인간의 문제를 넘어 근원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기에 북녘 하늘밑에서도 신앙화된 측면들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세기동안 제한된 형태로 북한사회에서 종교를 이끌고 있는 수행승과 불자 그리고 그 분들과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20년을 넘게 통일과 북한불교를 연구하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지범 소장이 직접 쓴다. 

 

 


  “대남 및 해외교류사업의 중심인물”
  “조불련 역사상, 최고위급 인사 반열에 올라”
  “개성관광의 백미는 박연폭포”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중앙위원회(조불련) 제6대 강수린 위원장은 말수가 적다. 이것은 강 위원장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다. 역대 조불련 위원장을 역임한 분들이 거의 다 말 수가 적은 것이 특징 아닌 특징이다. 각종 회의 때마다 회의 내용과 관련된 공식적 내용만을 말하거나 정제된 말씀만을 하기에 그럴 법도하다. 


 사진(필자제공): 개성 영통사에서 만난 강수린위원장

 작년 말(2015.11.3) 개성 영통사에서 강수린 위원장을 처음 만났다. 하루 종일 일행들과 같이 지내면서도 공식적이거나 정해진 말씀이외에는 농담 등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알고 있습네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도가 전부였다.

 일찍이 서화담(경덕), 황진이와 송도 3절로 불린 박연폭포(朴淵瀑布)에서 강 위원장이 “이번에 물이 적어 박연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습니다.”라고 한 것이 가장 길게 한 대화멘트로 기억이 된다. 

 지난해 초겨울의 박연폭포는 사진속의 장쾌한 폭포수와 달리 수량이 적어서 한줄기 실타래정도의 물줄기로 낙차 37m 은하수(銀河)의 명맥을 유지하고, 물웅덩이(고모담)의 물도 1/3로 줄어들어 있어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햇무리를 품은 박연은 멀리서, 투명한 쪽빛을 머금은 용추(龍湫) 두 연못의 속살들을 다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개성관광의 백미는 단연코 박연폭포이다. 개성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의 천마산과 성거산 골짜기에 생겨난 폭포의 위쪽에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인 박연이 자리하고 있다. 박연은 큰 바위가 바가지 모양으로 파여진 제법 큰 물웅덩이다.
 그 가운데에는 섬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어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이 바위에 부딪쳐 맴돌면서 박연에 담겨졌다가 다시 폭포로 떨어진다. 지금은 험한 계곡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사진(필자제공): 박연폭포 초겨울 전경(2015.11)

 박연에는 수행자인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에게 문수보살과 변재천녀(관음보살)가 나타났던 《삼국유사》의 전설까지 서려있다. 그 아래쪽으로는 용추, 용소로 불리는 고모담(姑姆潭)이 있다. 폭포의 물을 다 받아들이는 고모담은 둘레 120m, 직경 40m의 커다란 연못이다.

 이곳에 대한 경치와 시인의 감정을 표현한(先景後情) 것은 중국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의 시, 《봄날의 소망(春望)》에 비유하여 조선후기의 학자 삼연 김창흡이 시를 쓴 장본인이고, 천마산의 경관이 수련(首聯)이고 함련(頷聯)은 박연폭포다. 그 주변의 경치를 경련(頸聯)이라 했다.


 고모담에는 황진이의 글씨를 새긴 대용암(大龍岩)이라는 용바위가 있는데, 용두가 수면 위에 나와 있지만 시인문객에게 진짜 용은 못 바닥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면서 마지막의 미련(尾聯)은 자신의 심회라고 했다. 미련은 중국 강서성 광려(匡廬)인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소식(蘇東坡)이 ‘제서림벽(題西林壁)’에 적은 것을 본떴다.

 “박연을 보려면 범사로 가라”하듯이 그 으뜸은 고모담 동쪽언덕의 범사정(泛槎亭)에서 보는 경치이다. ‘박연폭포가 안개 위에 떠있는 듯하다’, 또는 ‘안개바다 위에 떠가는 떼와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범사정에서 보는 폭포는 단풍으로 물든 전경이야말로 신선의 경계가 따로 없다.

 개성 박연폭포에는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황진이(黃眞伊)가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 이백의 시(「望廬山瀑布」)를 인용해 “물줄기 날듯이 쏟아지니 그 길이 삼천 자(飛流直下三千尺) 마치 은하수가 구천으로 쏟아지는 듯(疑是銀河落九天)”이라고 용바위에 새긴 시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 한다. 이 폭포 앞에서 강수린 위원장은 “후세에 길이 남길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들자”고 당부했다.

 사진(필자제공): 범사정과 박연폭포

 그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일명 아ㆍ태)와 해외동포원호위원회 등에서 국제조직 활동을 추진해온 강 위원장의 제안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특히 2013년 5월 8일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 등록된 바와 같이 북한의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에 오른 국제적인 인물이다.(1) 당뇨로 인해 2015년 10월초에 리충복 부위원장(보건성 부상)으로 교체되기까지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을 맡았다.(2)


 역대 조불련 위원장으로서는 가장 고위직에 오른 강수린 위원장은 1952년 평양 출신으로 보이나 학력 등 구체적으로 알려진 이력은 아직 없다. 다만, 조불련 상무위원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1989년 공식화된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 등을 수학한 것으로도 추정이 된다.

 강 위원장의 공식적 경력은 중국 북경에 위치한 아ㆍ태 등에서 2000년대까지, 그 후 북한에서 해외동포원호위원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0년 9월 4일 서울에서 남북간 총리(강영훈ㆍ연형묵)를 단장으로「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를 의제로 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의 수행원으로 참가하였다. 2004년부터는 6.15민족공동행사 등에서 교류협력을 담당하면서 2006년 ‘6.15민족통일대축전’ 광주행사의 북측대표단 55번 강수린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국장 자격으로 참석했으며,(3) 2007년 11월 29일에는 고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통일전선부장)의 서울방문 때에도 수행원을 맡아 방문한 바 있다.
 

 국내언론에서 다소 정치적 인사로 평가하고 있지만, 북한불교의 법계기준에서 보면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조불련 내부 승진의 형태로 당시 서기장과 부위원장을 역임한 심상진 제5대 위원장(2008년 8월~2012년 10월)에 이어 강수린 위원장은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11월 18일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17기 4차 전원회의에서 조불련 제6대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12월 26일 평양 대성산 광법사에서 공식 취임을 한 강수린 위원장은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자제하다가 2014년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윤이상음악연구소 창립30돌 기념음악회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들과 처음으로 대외활동을 가졌다.(4)

 이것은 2014년 6월 29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봉행한 만해스님 열반 70주기 남북합동다례 행사와 그해 10월 13일 신계사 복원 7주년 조국통일기원합동법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공개적으로 가진 첫 국내활동이다.

 

 사진(필자제공): 박연폭포에서, 강수린위원장과 필자

그 후 강 위원장은 2014년 10월 16일~18일 중국 산시성(陕西省) 바오지시(寶鷄市)에서 열린 제27회 세계불교도우의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총회에 직접 참가하여 국제활동을 처음 가졌지만,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의 회동은 1년이 지난 시점인 2015년 3월 26일 중국 심양 칠보산호텔에서 직접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강수린 위원장이 법명을 사용하고 법복을 착용한 공식적인 행사는 취임한지 만 3년이 지난, 2015년 10월 15일 금강산에서 조계종과 공동 주최한 '금강산 신계사 낙성 8주년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가 처음이다. 또 그해 11월 3일 개성 영통사에서 천태종과의 공동 법회를 통해 다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교류와 동시 또는 공동법회 등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강 위원장의 법명은 지성(芝盛 ?)이다. 2015년 10월 금강산 신계사 법회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법명에 대한 한자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정성을 다해 한 곳만을 이룬다’는 뜻의 지성이란 법명은 2005년 11월 11일 갑자기 입적한 학림당 박태화 조불련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전한다. 강 위원장이 북한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학림(鶴林) 대선사로부터 공식 수계를 받았다면 사실상 정통적 계보를 이룬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오늘날의 북한종교계는 김일성 주석의 모친으로 종교계의 대모인 강반석(康盤石) 여사의 계열로 볼 수 있다. 흔히 친등(親等) 또는 촌수(寸數)가 10촌이라면 매우 가까운 친척이다. 2012년 11월 취임한 강수린 조불련 위원장과 그리고 강양욱 국가부주석의 아들로서 2012년 1월 21일 사망한 강영섭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중앙위원회 위원장(평양신학원 원장)의 아들인 강명철 위원장이 2013년 7월에 조그련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조선가톨릭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에는 2015년 10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의 강지영 국장이 장재언(철) 회장에 이어서 위원장으로 전격 취임하고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직을 또한 겸직하고 있다.(5) 이로써 북한의 3대 종교계를 평양 만경대(萬京臺) 칠골(七骨洞)의 문중에서 모두 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는 광복군 출신의 최덕신 장군의 부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현재까지 맡고 있으며, 지난 2월 14일에는 95세 생일상을 받았다고 한다.
 

 2010년 5.24 조치와 2016년 개성공단 폐쇄에 이은 대북재제 조치로 말미암아서 2015년까지 부분적으로 진행되던 남북 종교교류까지는 모든 측면에서 통제되고 있다. 1~2년 사이 내부조직을 새롭게 정비한 북한의 종교계는 체재복무와 교류협력이라는 주요한 과제를 각기 안고 있다. 북한불교계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해법과 비전을 찾아야 하는 강수린 위원장으로서는 ‘제2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다음 편으로 연재가 이어집니다)
 

-출처-
(1) 《통일뉴스》 2013. 7. 11일.
(2) 《세계일보》 2015. 10.14일.
(3) 《통일언론》 2008. 5.10일.
(4) 《CBS노컷뉴스》, 《조선중앙통신》 2014. 9.27일.
(5) 《통일뉴스》 2016. 2.15일.


이지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20여년간 통일과 북한불교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
현재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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