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 서부의 야말(Yamal) 툰드라 지역에서 탄저균이 발생해 2,000 여 마리의 순록이 죽고, 아동 1명을 포함한 유목민 13명이 탄저균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시베리아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열에도 죽지 않고 사람의 면역세포를 파괴해 감염자의 80~90%가 사망하는 탄저균의 치명적인 특성 때문에 해당지역은 비상에 걸렸다. 지역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탄저균에 감염된 순록을 모두 불태웠으며 주민들을 탄저균 발생지역으로부터 대피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영구동토층 해빙으로 되살아난 탄저균
아직까지 탄저균 발생의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영구동토지대에 묻혀있던 탄저균이 되살아난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20세기 초, 시베리아에서는 탄저균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서, 1백만 마리의 순록이 죽었다.
현재 시베리아에는 탄저균에 감염된 순록사체들의 매장지가 7,000 곳이나 된다. 지구기온이 처음으로 관측된 이후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여름까지 세계는 최고 기온을 경험했다. 엘니뇨현상도 가세해서 전 지구가 폭염, 가뭄, 태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전 세계가 최고 기온을 기록하면서, 여름 최고 온도가 섭씨 15도밖에 되지 않았던 시베리아 서부에서 조차 기온이 올해 35도까지 상승했다. 이런 기록적인 폭염이 영구동토지대를 녹이고 그 속에 묻혀있는 순록의 사체에서 탄저균을 부활시켰다고 보는 이유다.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잠자고 있던 박테리아가 깨어난다는 것이 좀비를 다룬 영화 속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2007년 발표된 연구보고서에서 탄저균 포자가 105년 동안 영구동토층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더 깊은 곳에 묻혀 있을 경우, 탄저균은 더 오랜 기간 동면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온도가 낮은 곳에서 탄저균은 포자로 바뀌는데 온도가 올라가길 기다리다가 일정 온도가 되면, 움직일 수 있는, 전염성 있는 상태로 바뀐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연구자들은 영구동토 지대가 녹으면서 탄저균 뿐만 아니라 18-19세기의 치명적인 전염병 매개체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예측에 신뢰를 더해주기라도 하듯 캐나다의 과학자들이 알래스카의 툰드라에 묻힌 동물 사체에서, 1918년 발생해 세계인구의 3~5%를 죽음에 이르게 한 스페인 독감바이러스를 발견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던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영구동토지대에 묻혀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영구동토지대는 지금과 같이 얼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할 판도라 상자와 같은 곳임은 분명하다.
해빙되는 영구동토지대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방출이 더 큰 문제
그런데 기후과학자들은 영구동토지대 해빙이 가져올 가장 심각한 문제로서, 탄저균이나 병원균의 부활보다, 영구동토 지대에 묻혀있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 또는 메탄가스의 방출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영구동토지대는 시베리아 서부지방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를 거쳐 캐나다와 알래스카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 북반구 지표면의 24%를 차지한다. 이제 이 영구동토지대가 막 해빙을 시작했는데, 이는 심지어 온난화에 가장 회의적인 과학자들까지도 우려하는 현상이다. 이 동토지대에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수 만년 간 축적된 식물의 사체가 묻혀있다.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미생물들이 동토층에 묻혀있는 식물사체를 분해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은 영구동토 지대에서 방출될 대부분의 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의 형태를 띨 것으로 예측하고 있지만, 방출될 메탄가스의 양이 작더라도 메탄가스의 특성상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만큼 대기 중에 오래 잔존하지 못하지만, 이산화탄소보다 단기간에 수 십 배나 강한 온실효과를 나타내는 기체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구동토지대가 해빙될 경우 방출될 탄소량이 1조 7천톤에서 1조 8천500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을 섭씨 2도로 제한하기 위해서 국제사회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총량이 1조 톤이다, 또한 산업혁명이후 지금까지 인류가 대기 중에 배출해온 탄소가 7천 300억 톤이므로 앞으로 배출 가능한 탄소총량은 3000억 톤 미만이다. 앞으로 배출가능한 탄소량을 비교해보면 영구동토지대에서 방출될 탄소량은 엄청나다.
기후과학자들이 영구동토 지대의 해빙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는 영구동토 지대의 해빙으로 인해 방출될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또 이로 인해서 영구동토 지대의 해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과학자들은 이를 양성피드백(positive feedback)이라고 부른다.)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도가 더 높아져서 영구동토지대 해빙이 더욱더 가속화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류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지구온난화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구동토 지대의 해빙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합의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수포로 돌릴 수 있는 사안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영구동토 지대의 해빙 문제는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아직 큰 관심을 얻지 못했다. 2005년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제기되어, 2011년에 예측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기후변화에 대해서 가장 권위 있고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조차 다섯 차례에 걸쳐 발간한 보고서에서 영구동토지대의 해빙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는 이 지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져 있지 않고, 역사도 짧기 때문이다.
영구동토층의 해빙까지 고려한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을 연구하고 기후변화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지난해 파리기후총회 이후 각 국 정부가 제출한 자발적 온실감축 계획만으로는 2도 상승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영구동토지대의 해빙이 본격화되기 전에 파리기후 총회를 계기로 제출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감축 목표를 보다 과감하게 상향 조정하지 않는다면 지구온난화로 인한 파국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 관련기사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