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UN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 참석한 195개국 정부대표들은 당사국 모두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한편, 지구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 억제를 목표로 노력할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기후협약에 합의하였다.
1997년 합의되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행된 교토의정서 체제가 유럽, 미국, 러시아, 호주 등 서구산업국 37개국을 중심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로 합의했던 반면, 파리기후협약은 처음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 즉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국의 99%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1994년 UN기후변화협약(UNFCCC)이 조인된 지 실로 20 여 년 만에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한편, 지구평균 기온상승을 산업화이전 대비 섭씨 1.5도 상승 이하 억제를 목표로 하고, 섭씨 2도 상승 이하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행 메커니즘의 한계, 손실과 피해보상에 대한 메커니즘의 부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보다 과감한 목표 설정임은 분명하다. 당사국의 3분의 2가 1.5도씨 제한을 요구했고, 2도 상승에서는 해수면 상승으로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를 마샬제도, 몰디브와 같은 섬나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도씨 제한을 결의했던 2009년 코펜하겐UN기후변화당사국총회 보다 일보 전진한 것이다.
UN기후총회가 1.5도 상승 억제라는 목표에 합의하기까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군소도서국들과 최빈곤 국가들의 끈질긴 요구가 있었다. 그동안 1.5도 상승만으로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하고, 지역의 식량안보가 아주 심각해지며 특히 아프리카에서 주식 생산량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파리기후협약은 이러한 전망과 더불어 2도씨 이상의 기온상승이 작은 섬나라뿐만 아니라 뉴욕과 같은 해안도시까지 잠기게 할 것이며, 폭염, 산불, 폭우, 가뭄이 더 일반화될 것이라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연구결과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당초 1.5도 목표를 반대했던 미국은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바꿔 1.5도 목표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미국은 1.5도 목표를 지지한 대신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 지원기금 증액이나 ‘손실과 피해’ 메커니즘에 대한 논의에서는 편파적인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12월 10일 파리기후총회 협상장에서 ‘손실과 피해’ 부분이 제기되자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차별화나 재정의무를 이야기한다면 선진국은 협상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기후변화 피해국의 피해보상, 예를 들어 수몰 위기에 처한 섬나라 주민들의 이주 지원 등 재정지원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협약에 삽입될 경우, 미국은 사실상 상원으로부터 협약에 대한 비준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을 이해한다 해도, 기후변화에 가장 큰 원인 제공자들이, 기후변화에 아무 책임이 없으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군소도서국, 취약국에 대한 피해보상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불교사상,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할 수 있어
파리기후총회에서 1.5도 목표에 합의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큰 공은 국제종교계와 시민사회에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18일, 기후변화와 환경을 주요 골자로 한 회칙을 발표한 로마 가톨릭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이 가장 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을 발표한 직후부터 도미노처럼 세계 이슬람, 불교, 힌두교 지도자들의 기후변화에 대한 성명서와 입장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종교계의 성명서는 모두 산업화이전 대비 지구평균 기온 1.5 상승의 제한을 요구했다. 종교계의 요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예년의 기후총회에 비해 수십 배의 숫자에 달하는 종교인사들이 총회에 참석했고, 기도와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파리까지 기후여정을 조직했다.
더불어 주요 종교계 인사들은 종교계가 발표한 성명서와 입장문을 UN기후변화협약(FCCC)의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Christiana Figueres) 사무총장과 파리기후총회 의장국인 프랑스의 올랑드(Holland)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 이 가운데 스리랑카의 승려이자 국회의원으로서 세리시나(Serisina) 스리랑카 대통령의 자문 자격으로 UN기후총회에 참석한 라따나(Rathana) 테로는 국제불교계가 발표한 ‘기후변화에 대한 성명’과 ‘선언문 : 행동할 때는 지금“ 두 가지를 올랑드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였다. 이 자리에는 가톨릭 신자로서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이미 세계적인 인사가 된 예브 사노(Yeb Sano) 필리핀 정부의 前 기후변화담당관이 함께 했다.
라따나 스님이 올랑드 대통령에게 전달한 불교계의 기후변화 선언문과 성명서는 UN기후총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10월 29일 발표되었다. 성명서는 새로 작성된 것이지만 선언문은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고 국제불교구호단체 International Buddhist Relief의 대표이자 미국불교도연합의 의장인 비구 보디(Bhikkhu Bodhi) 스님, 미국의 불교학자 데이비드 로이(David Loy), 존 스탠리(John Stanley) 등이 2009년 작성하여 발표한 것을 약간의 내용 수정을 거쳐 다시 발표한 것이다.
성명서에는 달라이라마, 까르마파와 같은 세계적인 티베트 불교지도자와 플럼 빌리지의 틱 낫한 스님, 비구니를 대표하여 텐진팔모 스님, 한국,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의 불교교단을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들, 미국과 프랑스 불교도연합 대표 등 500여 승재가 지도자들이 서명하였다. 성명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 기온의 상승을 1.5도로 억제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이러한 목표를 현실화하는데 경제적,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불교계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하고 지구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전반적인 생태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다룬 선언문 “행동할 때는 지금”에서 불교지도자들은 “인류는 우리의 공업(共業)이 만든 엄청난 생태적 위기에 살고 있다. (중략) 인류는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불교지도자들은 선언문에서 “모든 살아있는 존재를 위해서 불교가 지닌 자산에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역사적으로 이보다 더 중요한 시기는 없다. (중략) 우리가 직면한 위협과 재난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마음의 중대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사성제는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적절한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체계를 제공한다.”며 사성제를 비롯한 불교사상이 현재의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위기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더 나아가 선언문은 “개인의 고통이 탐진치 삼독 중에서 탐욕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집단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해를 가하는 고통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중략) 우리는 타인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자아의식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며 생태위기 해결을 위해서 연기적 세계인식의 필요성, 탄소발자국을 줄여나가는 개인의 행동과 경제제도의 변화 등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비구 보디스님은 12월 파리기후협약이 발표된 직후 발표한 글에서 “기후변화 위기는 도덕적, 정신적 차원의 시스템 위기”라며, “기후변화는 가치전도의 한 모습이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통해서 우리는 지배적인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가장 분명한 왜곡을 볼 수 있다. (중략) 기후변화는 사회정의 규범의 위반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말했다.
국제불교계 CO2 농도 350ppm 유지 촉구
한편, 지구평균 기온 상승 1.5도 유지만을 강조한 다른 종교계의 선언과 달리 불교계의 선언문은 “인간문명이 지속가능하려면 대기 중 안심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350 ppm 이하여야 한다.”고 밝힌 점에서 매우 과감했다. 그런데 미국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1958년 온실가스를 관측한 이래 처음으로 2015년 3월,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 ppm을 이미 넘어섰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불교지도자들은 선언문에서 “이미 400 ppm을 넘어섰고, 매년 2ppm 씩 상승해왔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매우 우려된다.” 며, “탄소배출 감축뿐만 아니라 대기 중에 존재하는 다량의 탄소가스를 제거해야 한다. (중략) 350ppm 목표를 지지하며, 이를 위해 개인적, 집단적 책임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국제불교계의 이러한 주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연구소(Godard Institute)에 재직 기간 중 1988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화석연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증언함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정치 의제화하고 공론화시키는데 기여한 제임스 핸슨((James Hansen) 박사의 주장에 근거한다.
제임스 핸슨은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400ppm 농도에서도 위험한 수준의 가뭄, 폭염, 태풍, 폭우 등이 발생하고 있는데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수명이 수 십 년에서 수 천 년에 이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만으로도 앞으로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12월 제임스 핸슨, 요한 록스럼 등 15명의 세계적인 기후과학자들은 탄소농도가 350ppm 정도 되어야 지구가 안전하다는 점을 밝히면서, 이미 대기 중에 축적된 탄소농도 때문에, 지구 평균온도를 3-4까지 높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 연구자들은 탄소농도를 350ppm 수준으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기술과 재정이 이미 있다며,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파리기후총회에 참석한 제임스 핸슨 박사는 “2도 제한은 책임 있는 목표가 아니다. 1도로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1.5도, 2.0도가 아니라 탄소농도를 500기가 톤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기후협약 만으로는 파국 멈출 수 없다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역사적인 파리기후협약이 탄생했음에도 파리기후협약은 여러 면에서 구속력이 약하다.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억제하기로 하였지만, 각 국 정부가 기후총회에 제출한 ‘자발적 온실가스감축 목표(INDCs)'를 종합해보면 지구온도를 21세기 중반까지 2~3도 높일 것이라는 것이 기후전문가들 대다수의 전망이다. 또한 각 국 정부가 감축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구속력 있는 이행 메커니즘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5년마다 각국의 감축 이행 결과를 검토하고 목표를 재조정할 수 있지만,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현재 섭씨 1도 상승한 상황이지만, 너무 덥고 위험하며 빠른 시일 내에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하지 않으면 2030년이 되기도 전에 2도까지 기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대표적인 기후운동 단체인 350.org의 설립자 빌 맥키번(Bill McKibben)의 전망은 더욱 더 암울하다. 그는 “현재 대기 중에 잔존하는 온실가스 농도만으로도 4-5도 상승할 수 있다”며 그래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온실가스 농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기후 협약 타결로 세계가 저탄소 시대로 갈 것은 분명하지만 얼마나 빨리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가가 관건이라고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빌 맥키번은 제임스 핸슨과 뜻을 같이 한다.
그런데 최근, 제임스 핸슨이나 빌 맥키번 같은 이들이 말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3월 중순,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는 올해 2월 지구표면 온도가 1951-1980년까지 30년간 2월 달 평균온도보다 섭씨 1.35도 높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1880년 지구 표면온도를 분석한 이래 평균치 대비 상승폭이 가장 높다. 전문가들은 나사의 보고서 발표를 두고, “나사가 폭탄을 던졌다”고 말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년, 올해에 걸쳐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엘니뇨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와 같은 온도상승은 이례적이다. 이에 독일의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스테판 람스토르프 교수는 “이제 우리는 비상사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런던 정경대학 그랜담 기후변화연구소의 봅 워드(BoB Ward)도 “지난 5개월 동안 매달 전 세계가 그 전의 어느 달보다 더 더웠다”며 “이는 매우 우려되는 결과”라고 말했다.
기후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온실가스 감축을 과감하게 이행하지 않거나 속도를 늦춘다면 21세기 중반이 되기도 전에 기온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그 영향도 극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올해 4월 22일 UN 뉴욕 본부에서는 전 세계 지도자들이 파리기후협약을 다시 확인하고 저탄소 이행에 대한 약속을 다짐하는 중요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파리기후협약이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4월 22일 조인 행사 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55%를 점하는 55개국의 의회가 파리기후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2월 중순 현재 피지만이 협약에 비준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