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닭들은 모이를 주는 줄 알았습니다

생명/생태/기후 - 정성운 (살림지이) | 2021. 제29
 - 산안마을 닭 살처분, “지켜주지 못해 미안…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지난 19일이었습니다. 끝내 산안마을의 37천의 닭들이 살처분 당했습니다. 그날 산안마을에 갔습니다. 닭들은 폭 1m, 길이 2m, 높이 1m 크기의 케이지에 담겨 비닐로 밀폐됐고, 이어 이산화탄소가 주입됐습니다. 이날 아침에도 닭들은 죽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계사에 다가가니 모이를 주는 줄 알고 꼬꼬거리며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톤백에 담긴 죽은 닭들은 5톤 트럭에 실려 떠났습니다. 분쇄, 소각처리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계란 125만 개도 비닐에 담겨 소각되었다고 합니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닭들이 죽어 떠나는 길가에 나와 현수막을 펼치고 배웅의 목념을 했습니다.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산안마을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37천마리의 닭들, 전국의 28백만 수의 가금류, 지금껏 살처분된 수억 마리의 가축동물들에게 보내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앞으로 전개할 운동의 힘으로 바꾸어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님의 침묵의 한 구절,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를 인용한 후 다짐의 뜻을 밝혔습니다. “산안마을은 오늘 이 슬픔의 힘을 옮겨서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무고정 전진하겠습니다.” [아래에 산안마을 입장문 전문이 있습니다]

 

 

흰 방역복을 입은 이들이 케이지에 닭을 넣고 비닐로 감싸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살처분하고 있는 모습. 살처분된 닭들은 분쇄, 소각된다.

 

산안마을 닭들의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했던 90여 단체들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순결한 37천 수의 생명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이후로 더 이상 이런 야만의 피흘림이 없게 하겠습니다고 밝혔습니다. [아래에 단체들의 입장문 전문이 있습니다] 

 

단체들은 입장문에서 산안마을 농장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절박한 물음은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대등한 생명체로 공존할 것인가 입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간의 팬데믹과 동물의 팬데믹은 모두 인간의 천박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같은 동물로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한지배와 폭력은 정당한지?

  기후위기 속에서 산업축산을 계속 끌고가야 할 것인지?

  과연 인간의 동물에 대한 묻지마 지배와 학살은 인류문명의 평화와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지?

 

정부의 살처분 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2018년에는 국회의원들이 움직이기도 했습니다. 불교계에서도 2014, 2018년에 조계종총무원을 비롯해 여러 단체와 기관들이 나서서 대대적이라 할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정부는 2018년에 예방적 살처분 거리를 3km로 확대했고, 이에 따라 예전보다 더 많은 닭들이 이번에 살처분되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것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닭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입니다. 죽어서 떠난 생명의 짐이 어쩔 수 없이 다가오나 봅니다.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는 산안마을 사람들의 다짐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떠오르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다시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그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군부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미얀마의 여러 시민들이 군부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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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안마을 입장문

                                  닭들을 보내며

 

인간에게 주고주고 또 주기만했던 닭들은

법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아니 법만 없었어도 잘 살 수 있었습니다.

인간들을 위해 가축화된 닭.

닭은 살아서 달걀로, 죽어서는 고기로 자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아낌없이

내어줍니다. 이런 닭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이렇게 함부로 대합니까?

조금 전까지 또록또록한 눈빛으로 살아 있던 닭들에게 인간으로서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참담합니다. 37000 마리의 닭 한 마리 한 마리

120만 개의 달걀 한 개 한 개 모두 귀한 생명입니다. 전국적으로 28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죽어 나가는 지금, 농축산부 가슴 속엔 아파하는 농가, 비명 지르는

동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까? 이 아픔과 비명을 근절하는 것에 행정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게 요구한다.

가축전염병예방법 제1조의 목적,

축산업의 발전과 공중위생 향상에 이바지하는 행정. 본래 목적에 충실하라

조류인플루엔자는 매년 발생하는 질병이다.

거리방역에서 역학방역으로 가자:

죽이지만 말고 살리는 경험을 축적하자 매년 축적되는 경험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K가축방역 구축하자.

중앙통제에서 협력체제로 가자 :

농가, 지자체, 농림축산식품부. 전문가. 각각의 위치에서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야 방역은 완성되고 막강해진다. 나만 따르라는 농축산부 방식으로는

절대 바이러스를 막아내지 못한다.

기계적 형평성에서 공정한 형평성으로 가자:

억울한 농가를 최소화하는 게 형평성의 기준이다. 영세한 중소농가를 끌어안고

열심히 키우고 방역하는 농가를 육성하는 형평성으로 진화하자. 기계적 형평성

논리로 농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대신 행정의 품위를 지켜 달라.

정책의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음을 잊지 말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산안마을 유정란을 사랑해주신 활용자 여러분

화성시 시민청원·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공감을 눌러주셨던 시민 여러분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기 매우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함께 해주셨던 마음에 진심으로 고마웠음을 전해드립니다.

화성시 시민사회·환경운동연합 및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소속단체,

두레생협 한살림을 비롯한 먹거리 단체,

카라를 비롯한 동물권 보호단체, 생태마을네트워크 소속 전국의 공동체마을들,

일선 시도공무원·시도의원· 국회의원,

부지런히 취재하고 기사를 내주셨던 언론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 59일간의 여정은

이기고 짐을 넘어서고,

다툼과 대립을 넘어서고,

서로 살리고 살려지는 생명순환운동 이라는 산안마을의 정신이 어느덧

시민들과 만나 현실을 바꾸어 왔습니다.

반복되는 행정명령을 결론이라 체념하지 않고 결과를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서로서로 배웠고 관계는 두터워졌습니다. 산안마을은 이 모든

분들과 한 몸이 되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친환경축산 확대의 필요성과 동물권, 생명윤리 의식이 고조되고 있음은 물론

정책변화의 조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오늘의 37000마리 닭들, 전국의 2800만 마리, 이제껏 살처분된 수 억

마리의 가축동물에게 보내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앞으로 전개할 운동의 힘으로

바꾸어가도록 합시다.

 

마지막 정리를 한용운님의 시 <님의 침묵>의 한 구절로 대신할까 합니다.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산안마을은 오늘 이 슬픔의 힘을 옮겨서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무고정 전진하겠습니다.

 

                                                                                                          2021219

                                                                                                                      산안마을 

 

 

 

정성운 (살림지이)
현대불교신문사 편집국장과 불교포커스 주간을 거쳐 현재는 농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귀농을 준비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불교와 사회를 잇기 위해 생명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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