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민주주의 그리고 말(言)에 대하여

편집진 편지 - 편집위원회 (신대승 e-매거진 편집위원회) | 2016. 제1


 조계종총무원장이 직선제를 반대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코끼리가 되어 봐서 잘 안다. 여러분은 귀만 만지고 다리만 만진다. 코끼리가 되어서 보니 분규가 가장 위험하더라.”(불교닷컴) 이 말은 타당한 것인가? 이 점은 좀 따져봐야 할 문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원효가 화쟁론을 전개하면서 든 비유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우리의 상식은 사물의 일 측면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양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쯤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나는 코끼리가 되어봐서 잘 알고 당신들은 일 측면만 보아서 모른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개의 경우 말하는 당사자 본인은 장님이 아니라 코끼리의 전모를 보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원효가 이 비유를 사용할 때 한 가지 핵심적 사항은 자신 또한 ‘장님’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조성택) 결국 총무원장은 자신이 장님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잘 모르겠다. 그가 정치적으로 깨달아 중생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람일까도.

 총무원장은 말을 바로 해야 했다. 자신이 본 것은 이러저러 했다라고, 그러니 우리 각자가 본 것이 무엇인지 논의해보자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의사소통 중이었다.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최선의 방법을 찾는 숙의 중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심각하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공동체의 미래운명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시급한 상황에서 긴급한 해결책을 찾는 문제, 충분한 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할 대안을 찾는 문제, 현재 상황에서 잠정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합의를 토출하는 문제 등을 열거할 수 있겠다.”(이준웅)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지도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여 공동체가 최선의 집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만 그러한가? 아니다. 알다시피 붓다는 ‘자주 모여 진리와 정의에 대해 논의하라’는 불법공동체 번영을 위한 지침을 남겼다. 이 가르침의 취지는 우리가 중생인 한에는 진리 또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고 어떻게 체현되는가에 대해 논의 즉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야 확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런 차원에서 붓다는 인류사에서 공동체 운영에 대한 ‘민주주의적 기획’을 한 유일한 성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동체의 운영(칠불퇴법)은 물론이거니와 진리에 대해서조차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주 모여서 논의하라’고 가르친 분이니 두말이 필요 없다 하겠다. 그렇다면 ‘내가 코끼리가 되어봐서 안다’는 말은 붓다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고,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인 민주주의에도 맞지 않는 말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대중공사를 통해 참가대중의 60퍼센트 내외가 총무원장 선출 직선제를 지지했음에도 종단 최고위 지도자가 대중의견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을, 그것도 ‘당신들은 총무원장 자리 안 해봐서 몰라’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것은 붓다의 공동체운영의 가르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제 제주지역까지 총무원장 선출제도에 관한 대중공사를 마쳤고, 거의 모든 권역에서 직선제와 준직선제를 선호하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런 대중의 의견이 조금이라도 반영되는 방향으로 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나마 부족한 소중한 역량과 에너지를 쓸모없는 일에 허비해 버리는 겉치레 말잔치를 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공동체 운영에 대한 붓다의 ‘민주주의적 기획’에 동의하는 불자들은 아마도 제도종단이 차려놓은 여러 논의의 장에서 철수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중들은 잘 모른다, 대중들은 책임의식이 없다’는 식의 인식과 선입견으로 공론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종단 의사결정권자들이 대다수라면, 대중을 대변하는 그 반대의 목소리가 모기소리만큼도 들리지 않는 현실이라면, 우리가 왜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그런 논의에 쏟아야 하는 것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비록 미미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붓다의 ‘민주주의적 기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하고, 실험하고, 현실의 역사 속에서 구현해 가는 정진에 더욱 힘을 쏟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모르는 것’, 확정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숙의의 과정, 의사소통의 과정을 존중하고, 이 과정에서 나(너)의 의견이 바뀔 수 있으며, 그렇게 결정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있게 행동한다는 규칙을 존중하는 그런 문화를, 이제야 비로소 언로가 막힌 구중궁궐을 벗어나 제방에서 활발발하게 꽃피울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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