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래의 오늘의 시] 풀과 칼

인문/기행 - 이은래 (신대승네트워크 대표) | 2020. 제25

풀과 칼

 

맨손으로 잡풀을 뽑아 올리는데

날 선 저항이 살을 파고든다

 

어떤 시인은

'풀잎'하고 부르면

우리 입속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난다고 했지만

 

어떤 풀잎은

우리 손에 푸른 칼자국을 내기도 한다

 

하찮은 잡풀 한 포기도

뿌리를 지키기 위해 날을 세운다

 

날을 세우는 것은

나를 세우는 것

 

나는 언제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에 맞서

죽어라고 날을 세워 보았는가

 

손에 길게 맺힌 피를 보고서야

풀이 칼과 같은 종족임을 깨닫는다


이은래 (신대승네트워크 대표)
부천에서 야학과 청년단체 활동을 했으며, 부천노동자문학회와 부천시민문학회를 창립하여 함께하고 있다. 2018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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