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경제윤리에서 보는 기본소득

기획 - 정성운 (신대승 e-매거진 편집장) | 2020. 제23

붓다의 가르침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들의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주는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가르침의 범위는 경제 분야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다. 경제는 인간과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물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활동과 관련된 일체를 말한다. 부처님은 경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인간이 경제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부처님 재세 당시의 인도 사회가 상업이 발달하던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불교의 경제윤리란 경제활동과 관련되어 부처님이 제시한 바른 행위의 기준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그 요지는 열심히 일해 부를 쌓고, 그것을 가족과 이웃, 사원, 공동체를 위해 쓰라는 것이다. 불교학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특별히 가려뽑아 윤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의 보편윤리로 확립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경제윤리도 그 한 부분이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된 기본소득은 경제 분야이면서 정치, 복지 나아가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을 극복하려고 지급했던 재난지원금을 통해 우리는 기본소득의 일부를 체험했다.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이 쟁점이 되고 있다. 다음 대선이 다가올수록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는 점점 더 뜨거워질 것이다. 불교에서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부처님께서는 일상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가르침을 주셨듯, 기본소득에 대한 불교 경제윤리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해 지혜를 보태는 것은 불교의 역할이기도 하다.   

 

   

불교의 경제윤리


부처님은 대부호인 아나타삔디까(수달다 장자)가 보시한 기원정사를 받아 수행처로 삼았듯 재가불자의 재물()를 긍정했으며, 나아가 부를 얻는 것을 권유했다. 부처님은 재물의 경에서 재물에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고 했다. 재물이 자신과 이웃을 돌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재산에 의지하여 자신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고어머니와 아버지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고아내와 자식을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고친구와 동료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고수행자와 성직자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는 것이니이것이 재물의 다섯 가지 공덕이라고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5227재물의 경중에서. 위 인용은 이미령 지음 붓다 한 말씀에서 옮겨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듯 재물에는 공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재물로 인한 재난도 경계했다.

 

재물에는 다섯 가지 재난이 있다재물에는 불이 따라다니고물이 따라다니고왕이 따라다니고도둑이 따라다니며바람직하지 못한 상속자가 따라다닌다.” -‘재물의 경’ 앞부분 

 

이 경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부처님은 재물을 돌봄의 수단으로 보았는데, 돌봄의 대상에 자신과 가족은 물론 친구와 수행자를 포함했다. 이는 돌봄의 범위를 공동체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물도 돌봄의 범위에서 예외가 아니다. 불교의 경제윤리에서는 또 부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가 욕구 충족의 수단이 아니라 행복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라는 것인데, 방편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경전에 따르면, 사용하지 않는 부는 갈증을 채우지 못하는 저수지일 뿐이다. 부를 돌봄의 수단으로 삼으며, 적극적인 사용을 권유하는 가르침은 일반적인 경제학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불교 경제윤리의 요지는 담마에 따라서 부를 쌓고, 그것을 가족과 이웃, 사원, 공동체를 위해 쓰되 탐욕과 갈망에 끄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불교학자 피터 하비는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부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서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은 칭송할만한 일이며그 반대로 하는 것은 비난할 만한 일이다.

2. 자기 일의 생산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사용하면 칭송할 만하다: (a) 자기 자신에게는 마음 편하게 흔쾌히 베푼다. (b) 타인에게 나눠주며, 관대하고 선업을 쌓는 행위에 사용한다.

3. 부가 도덕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리고 자신과 남들에게 유익하게 쓰였다고 하더라도, 부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탐욕적이고 갈망적인 나머지 그 어떤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거나 영적인 발전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여전히 비난받을 만한 것이다. -피터 하비, 불교윤리학 입문, 348. 


공동체의 위기가 기본소득을 부른다

 

다양한 경제 주체 간의 이해 충돌은 불가피하다. 경제를 남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주체 간의 갈등이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 시대에는 이 갈등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논의되는 근본적인 배경은 공동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에 있다.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진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소득 양극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겠지만 감소의 폭이 너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부의 크기가 늘어나지만 임금과 고용이 정체되고 중산층도 못살게 되는 기술 발전의 역설을 불러오기도 한다. 다가올 20년 안에 미국과 유럽에서 50%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다. 이대로 가면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고 가난한 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에 대비한 우리나라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으며, 기껏 있는 일자리는 불안정하다. 비정규직 821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0.9%, 고용원이 없는 영세 자영업자 403만 명, 사실상 실업자 350만 명으로 실업 및 불안정노동자는 1692만 명이다. 60%의 노동자가 불안정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강남훈, 기본소득의 경제학). 통계상으로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지만 수많은 이들은 불안정하고 가난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가난은 삶의 수단이 박탈된 상태로서 그 자체로 고통이며 악의 근원이 된다. 현대의 평화학에서는 가난을 폭력과 공동체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가난은 욕망을 부추기는 제도와 문화, 왜곡된 분배구조와 제도의 악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에게는 법보다 밥을 먼저 주라고 했다. 전륜성왕사자후경에는 가난이 목숨을 빼앗는 일로 비화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가난의 구제를 전륜성왕(국가)의 의무로 제시하고 있다.  

 

궁핍한 자들에게 재물을 보시하지 않음으로 인해 가난이 만연했고, 가난이 커짐으로 인해 보시되지 않은 것을 빼앗는 일이 늘어났으며, 도둑이 늘어남으로 인해 무기의 사용이 늘어나고, 무기 사용이 늘어남으로 인해 목숨을 빼앗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빼앗음으로 인해 사람들의 수명은 줄어들고 그들의 미덕도 줄어든다. -불교윤리학 입문, 366.


 

기본소득 효과는 긍정적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는 기본소득을 자산조사와 근로에 대한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교부되는 주기적 현금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다음의 다섯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보편성이다. 지급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둘째 무조건성은 노동이나 기여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는 개별성. 가구가 아닌 개인이 받는다. 넷째는 정기성인데, 대체로 월 단위 급여를 의미한다. 다섯째는 현금 지급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시민들 스스로가 소비와 투자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인들의 실질적인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교성 백승호 서정희 이승윤, 기본소득이 온다, 117.)

수많은 나라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했고,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한 예로, 캐나다 정부는 19733월부터 4년 동안 위니펙시 더핀 마을의 가난한 1000여 가구에 해마다 3300달러(지금 가치로 15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민컴(Mincom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민컴이 실시되던 기간에 범죄율이 42% 감소했고, 자가 주택 비율은 4~6% 증가했다. 빚은 줄고 저축은 늘었으며, 주민의 병원 입원률이 8.5% 감소했는데 특히 정신과 치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앞으로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선진국에서 공공의료 지출을 상당히 절감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오준호,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86-88.)

강남훈은 기본소득 논의에서 1인당 월 30만원 지급을 상정하고 있다. 이 정도의 기본소득으로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경제적인 불안정을 일정 부분 완화시키거나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효과가 있다. 공동체가 나의 삶을 보살펴준다는 공동체의식의 확산도 기대할 수 있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으며, 엄청난 행정력이 들어간다. 수급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는 인권의 문제도 발생한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무조건 지급하는 제도이므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의 단점에서 벗어난다. 많은 기본소득 실험을 통해 장점이 드러났다. 기본소득은 보시를 통해 돌봄을 장려하고, 가난의 구제를 통해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불교 경제윤리의 관점과 맞닿아 있다. 불교계의 긍정적 논의가 요청된다.


정성운 (신대승 e-매거진 편집장) woon1653@hanmail.net
현대불교신문사 편집국장과 불교포커스 주간을 거쳐 현재는 농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귀농을 준비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불교와 사회를 잇기 위해 생명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편집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