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창의성을 키우고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길러주며, 사고의 폭을 넓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 갈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올바른 독서 습관을 배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이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어 줘야 좋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기 위해 많은 불자들은 공부를 한다. 하지만 정작 자녀교육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효과적이지 못한 모양이다.
어린이 책은 대부분이 부모님 등 어른들이 구매한다. 교보문고가 2006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최근 10년간 자사 유아·어린이 분야 도서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로 나타났다. 2위는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3위는 다다 히로시의 ‘사과가 쿵’이 차지했다. 국내 책으로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4위에, 백희나의 ‘구름빵’과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각각 5위, 8위로 뒤를 이었다. 20위 순위 안에서 국내 작가는 5명이다. 이런 상황에 어린이 불서를 찾아보기는 더 힘들다.
불서총판 운주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605종의 신간 불교서적이 출간됐다. 그 중 어린이 불서는 16종, 전체의 약 3%에 불과하다. 일반출판시장과 비교한다면 그 수치는 더 미미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작년 한 해 출협을 통해 납본된 도서를 중심으로 집계한 결과 신간 종수는 모두 45,213종, 그 중 아동문학은 모두 5,572종이다. 이렇게 쏟아지는 책 속에서 열 몇 권의 불서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사찰에서 등록한 1인 출판사들을 제외한 상업적 불교 출판사는 대략 30여 군데. 일반 출판시장과 달리 불교시장은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하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특히 어린이 불서를 1년에 1,2권을 출간하는 출판사는 손에 꼽는다.
이런 와중에 불교시대사의 어린이 책 브랜드 ‘참글어린이’가 어린이 불서 7권을 동시에 출간해 눈길을 끌었다. 작년 한해 출간된 어린이 불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동종업계에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린이 불서 출간의 고충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참글어린이 이규만 대표는 “타종교에서는 어린이 포교를 위해 많은 어린이 도서를 출간하고 있지만 불교에서는 힘든 상황”이라며 “번역서는 간혹 나오지만 창작 동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어린이 불서 출간이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계 출판사 관계자들은 ‘수익성’이 없음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어린이 불서의 대부분은 그림이 차지하는데 이 그림 비용이 어린이 불서의 가격을 좌우한다.
운주사 김시열 대표는 “어린이 불서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고 초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제작에 어려움이 있다”며 “출간을 해도 팔리지 않기 때문에 출간 수가 적다.”고 설명했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시장의 원리이다. 그 누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겠는가.
“출간을 해도 판매가 되지 않으니 어린이 불서에 대한 투자가 적어지고, 투자 금액이 낮아지면 책의 질이 낮아지고 사람들은 책을 사지 않고, 그 결과 출간되는 종의 수가 줄어들고…이렇게 악순환이 계속 되는 거죠.” 김 대표는 어린이 불서를 제작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단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대목이다. 어린이법회에서 불서 읽기를 장려하고, 종립학교에 책을 보급하는 등 종단에서 구조적·제도적으로 어린이 불서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출판사의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어린이 포교의 일부로 불교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이다. 이규만 대표도 포교의 한 방법으로써 어린이 불서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는 불자들의 관심을 강조했다. “어린이 책은 대부분 어른들이 구입합니다. 하지만 어린이 불서에 불자들은 관심이 없죠. 아이들의 학습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죠.” 어린이 불서가 불교계 내에서 조차 외면 받는 상황이다.
출판계의 신심과 원력만으로 어린이 불서를 제작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교계 내에서도 수요가 없는 책을 일반 대중들이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어린이 포교의 일환으로 어린이 불서가 수면 위에 드러날 수 있도록 불교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불교 출판계 관계자들은 “어린이 불서에 관심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하면 출판계의 선의의 경쟁으로 다양한 어린이 불서가 출간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책의 질이 높아지고 이것은 어린이 불서 시장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글어린이 이규만 대표는 신심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직접 발로 뛰며 동화 작가를 섭외하고 어린이 불서를 제작한다. “불서라고 해서 불상이나 스님이 꼭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오히려 불교적 색깔을 빼려고 노력해요.” 불교가 가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참신한 작가를 직접 찾아다닌다. 하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좋은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대표는 불교 경전 속 부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지만 정작 콘텐츠로 제작된 것은 그 수가 미미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백유경’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거든요. ‘백유경’에서만 98권의 책을 만들 수 있어요. 이런 경전이 수도 없이 많은데 만들어진 콘텐츠는 너무 적어서 아쉬워요.”
외면 받는 상황에서도 불교 출판계는 희망의 끊을 놓지 않는다. “어린이 불서를 읽고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이런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도서출판 참글세상 이규만 대표는 연간 10권, 총 108권의 어린이 불서 출간 원을 세웠다. 일반 불교서적으로 낸 수익을 어린이 불서에 투자하는 방법이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1년에 한, 두 권의 어린이 불서는 제작해야죠. 읽을 책이 없다는 것에 책임져야 하니까요” 불광미디어 류지호 대표는 불교의 미래에 대한 업계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이 불교계 신진 작가 양성을 위해 ‘법계문학상’을 제정했다. 시상부문은 장편 동화와 장편 소설로 아직 등단하지 않은 신인 및 등단 5년 미만인 신진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법계문학상이 참신한 동화 작가를 발굴하는 시발점으로 어린이 출판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