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만에 열린 노동당대회, 북한은 새로워지나? -1

사회정의평화활동 - 이창희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연구교수) | 2016. 제1

① 북한 노동당대회 주요 결정사항 스케치

※편집자 주 : 본 매거진은 36년 만에 열린 북한 노동당대회에 대한 분석과 향후 한반도 정세전망에 관한 심층분석기사를 연재합니다. 노동당대회의 의미와 결정사항 등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향후 남북관계의 변화예측, 한반도와 그 주변국의 대응패턴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으며, 3주마다 순서대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❶ 북한 노동당대회 주요 결정사항 스케치

  ❷ 북한(김정은)의 통치스타일에 변화가 오는가?
  ❸ 국제노선, 핵노선의 향방
  ❹ 남북관계 변화에 틈은 있는가?
  ❺ 향후 북한의 행동맥락(패턴)을 읽는 키워드는?
   
2016년 5월 노동당대회가 36년 만에 열렸다. 이번 당대회에는 모두 3,667명이 참석하였다. 이로써 현재 북한의 당원이 몇 명일까라는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조선중앙TV>에서 “각급 당 대표회에서 선거된 3,467명의 결의권 대표자와 200여명의 발언권 대표자 전원이 참여”하였다고 전했다. 1980년 6차 노동당대회에는 총 3,220명이 참석하여, 추정된 당원이 320만여 명이었다. 당원 1000명 당 1명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당대회에 참석시키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는 1,729만여 명으로, 당원이 인구의 18.6%를 차지하였다. 현재 북한의 당원은 360만여 명으로 추산되어, 2,458만 명의 북한 인구에서 14.8%를 차지한다. 예전보다 전체 인구에서의 당원 비율이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인구 6.7명 당 1명으로 많은 당원을 지닌 노동당의 나라가 북한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은 인구 13억여 명에서 공산당원이 9,000만여 명, 쿠바는 인구 1,100만여 명에서 공산당원이 100만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미 예견되고 있었던 7차 당대회?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7차 노동당대회가 북한의 당 창건 70돌을 맞이하는 2015년에 열릴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현재 김정은 정권의 안정화 국면과 맞물려서 안보 강화와 경제개혁 조치가 담긴 청사진이 7차 노동당대회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견은 2016년 러시아의 5월 전승절 행사와 중국의 9월 전승절 행사에 버금가도록 준비한 2만여 명의 군인과 10만여 명 군중이 참여한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70돌 열병식으로 대체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열병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작년 10월 30일 북한은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올해 5월 초순 열린다고 발표하였다. 다음날 <로동신문> 사설에서 “우리 당이 쌓아올린 거대한 혁명업적을 빛나게 총화하고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강성국가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적대강을 제시하며 그 관철에로 전당, 전군, 전민을 힘있게 불러일으킬 총진군의 대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발표된 7차 노동당대회는 연기설까지 나돌았다. 당 대회 준비 기간인 올해 1월 6일에 북한 주장대로 ‘수소탄시험’까지 했으니, 연기설이 나돌만한 소재들은 충분하였다. 하지만 지난 4월 27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명의로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를 2016년 5월 6일 평양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한다”고 보도된 후 연기설은 사라졌다.   

 이번 7차 노동당대회는 사실상 작년 당창건 70돌 기념 열병식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선군정치를 실행하고 있는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사회주의 수호를 다짐하는 동시에, 7차 당대회를 향한 문을 열었던 것이다. 그리고 ‘70일 전투’ 등 대대적인 반년 간의 준비를 통해서 36년 만의 당대회를 2016년 5월에 개최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진행과정은 비록 군사행진, 준비기간 등 본 대회까지의 긴 여정은 없었지만, 2011년 열린 쿠바의 제6차 공산당대회와 조금 유사한 측면을 지닌다. 소련 붕괴 이후 경제난을 겪었던 쿠바도 1997년 5차 공산당대회 이후에도 경제상황이 계속 개선되지 않자, 경제위기가 극복될 때까지 당대회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지만, 14년 만에 공산당 대회를 열었다. 2011년이 쿠바의 사회주의 국가 선언 50주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쿠바는 공산당 대회의 사전 행사로 사회주의 국가 선언과 미국의 피그만 침공 격퇴 50주년을 동시에 경축하는 대규모 군사행진을 진행하였다. 본 대회에서는 피델 카스트로는 친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공산당 제1서기 직책을 물려주었고, ‘진부한 도그마와 기준’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면서 외국기업 유치 및 민간 협동조합 역할 증대, 자동차와 주택 매매 허용 등 경제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럼에도 2011년 쿠바 제6차 공산당 대회의 핵심 기조는 쿠바 사회주의의 굳건함을 대내외에 알리는 것이었다. 

북한은 왜 7차 당대회를 했던 것일까?
   
 일각의 사람들은 “북한이 왜 당대회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본래 당대회에서는 당의 사업을 총화하고, 강령과 규약을 채택‧수정하거나, 당의 노선과 정책을 토의, 결정하면서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서 크게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는데, 당대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 주석은 1985년까지 사회주의경제건설 10대 전망목표를 실현하고, 1987년 7차 당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지만, 목표 달성이 여의치 않아서 당대회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였다. 

 최근 북한의 경제가 점차 회복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번 7차 당대회 취재차 평양에 방문한 40여 개국 174명의 외신기자들도 정작 당대회를 취재하지 못해서 북한 당국에 놀아났다고 분개하였지만, 평양의 거리나 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었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였다. 한국은행에서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1% 수준으로 북한이 경제 성장했다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과거 당대회에서는 주로 경제적 성과를 총화하고, 새로운 경제목표를 수치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7차 당대회에서는 그러한 양적인 총화나 양적인 경제목표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는 아직도 북한 경제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 있다. 


출처: 북한‧동북아연구센터, “북한 7차 당대회 내용과 향후 전망,” 「NK Issue & Analysis」 No. 2016-04 (서울: 한국수출입은행, 2016), p. 1.

 물론 이번 당대회의 목적에 대해서 집권 5년차 안정기를 맞이한 김정은을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선출하여 공식적인 국가 지도자로 추대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2012년 4월에 열렸던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서 노동당 제1비서로 김정은의 집권을 공식화하였다. 따라서 셀프대관식이라고 평가되는 7차 당대회의 ‘지도자 선출’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7차 당대회의 주요 결정사항을 보면서 과거와 다름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다시 등장한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기치!

 북한은 과거 인터내셔널가를 연주했던 것과 달리, 7차 노동당대회에서는 애국가를 연주하였다. 이는 곧 제2의 건국을 위한 다짐이며, 7차 노동당대회의 핵심 목적이었다. 이미 북한은 7차 당대회를 앞두고 <노동신문> 5월 4일자 정론에서 “우리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눈보라, 불바다길을 헤쳐왔던가”라는 문구를 제시하였다. 7차 당대회의 핵심 보고 내용은 ‘선군과 핵무력을 통한 체제 수호’였다. 사회주의권 몰락과 경제난, 국제 제재 속에서도 살아온 북한은 스스로 이번 당대회를 통해 제2의 건국 의지를 다지며, 사수한 체제를 다시 발전시키려는 사회주의 당-국가의 정상적 노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 등장한 구호가 당대회의 결정서에 담긴 ‘사회주의완전승리’의 기치인 것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는 ‘사회주의완전승리’를 1998년부터 북한에서 많이 회자된 ‘사회주의 강국’과 동일시하였다. 나아가 80년대에 제시된 북한 사회의 궁극적 목표였던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로 제시하면서 다시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7차 당대회에 대한 평가는 더욱 ‘과거로의 회귀’, ‘보수화’로 일색화되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7차 노동당대회에는 변화란 없었을까? 사회주의를 굳건히 고수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쿠바의 6차 공산당대회에도 경제개혁의 내용이 담겼다. 물론 올해 북한보다 한 달 앞서 4월에 열린 쿠바의 제7차 공산당대회에서 미국과의 수교에 따른 개혁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때보다 경계해야 한다”며, ‘자본주의의 부활’을 반대하면서 사회주의체제의 고수를 선언하였다. 세인의 예상과 달리 개혁심화의 7차 공산당대회가 아니라, 속도조절의 7차 공산당대회가 되었던 것이다. 

과연 북한의 7차 당대회는 보수적인 대회였을까? 아니면 미래를 위한 개혁적 변화의 내용이 담겼던 것일까? 

이창희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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