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멈춤, 거룩한 돌아섬

경제/트렌드 - 변택주 (작가) | 2017. 제15

요즘 윤구병 선생이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특별기고>을 읽고 있다. 선생은 우리나라는 50여 년 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안팎이던 나라가 2만 달러가 웃돌고 있으니 그때에 견주어 200배나 잘살고 있다. 공무원 봉급은 1,000배나 올랐고(참고로, 1963년 공무원 평균 임금이 3000~4000원이었는데 2013년 평균 임금은 300~400만원을 웃돈다) 쌀값도 거의 비슷하게 올랐다. 그러니 국민소득으로만 따지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50년 전보다 1,000배는 더 잘살고 있고, 농민들도 이 좋은 세상 만났다고 늴리리 타령을 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라고 묻는다.

 

1963년 서울 시내버스 삯은 5원이었는데, 2017년 현재 버스 삯이 카드로는 1,200, 현금으로는 1,300원으로 200배 넘게 부풀어 올랐다. 선생은 이어 서울 집값은 더 많이 올랐고, 집 없는 사람들은 몇 곱절 더 늘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마련에 드는 돈, ‘자녀 교육비모두 몇 백 배에서 몇 천 배까지 뛰어올랐다. 이것저것 제쳐놓고 생필품값만 따지더라도 물가가 줄잡아도 200배 몇 곱절은 오른 것이다. ‘2만 나누기 200100’. 이 숫자가 무얼 뜻하는가? 서민들 처지에서 보면 후하게 치더라도 국민소득은 여전히 100달러 안팎 수준에 머물러 있고, 삶의 질은 더 떨어졌다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우리가 지지리도 못살았다던 50년 전에는 버스삯이 5원밖에 안 되었다는데 200배나 더 잘살게 되었다는 오늘 왜 우리는 200분의 1한 푼이 아니고 1,000원이 넘는 버스비를 내야 하지?’ 하고 묻는 사람이 왜 하나도 없을까? ‘서른 해가 넘게 죽자 사자 몸 놀려 일했는데도 왜 나한테는 몸 눕힐 방 한 칸 없지?’ ‘어떤 사람은 한 해에 수천억씩 번다는데 왜 나는 시간 임금을 5000원도 못 받지?’ ‘일하고 싶은데 왜 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지?’ 하는 문제는 우리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다.”고 드잡이한다.

 

돈놀이에 놀아나 빚더미에 앉은 삶

흔히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이뤘다고 생각하면서 잘 살지 못하는 것은 힘이 달리는 내 탓으로 돌린다. 그렇지만 우리 노동자들이 50년 동안 뼈 빠지게 일을 했는데 본전은커녕 땅굴을 파고 있다면 힘들여 번 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기는 200만원짜리 유모차를 탄다. 12개월 할부다. 할부가 이라는 걸 사람들은 잊어버렸다. 스마트폰을 사면 이자는 얼마나 붙어있을까?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2년 할부로 샀을 때 5.9%, 3년 할부로 사면 10%가 할부이자로 붙는다. 그밖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회사를 비롯해 삼성이나 애플, 또는 스마트폰 유통경로에 있는 업체들이 내는 이자를 다 합치면 스마트폰 한 대에 45%도 넘는 이자가 붙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자동차를 판매원 수당은 자동차를 현금으로 팔았을 때보다 할부로 팔았을 때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자동차회사 업의 개념을 금융회사라고 할까? 하루에 세계에 떠도는 자금이 3조 달러나 된다. 문제는 그 가운데 제조, 무엇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2% 남짓이라는데 있다. 나머지 98%는 돈 놓고 돈 먹는 돈놀이 돈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 값 대부분이 거품이요 빚이라는 얘기다.

 

가계부채 규모가 올해 1분기에만 20조원 남짓 불어나면서,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국제기준에 맞춰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해마다 오르고 있다. 한국은행이 728일 발표한 ‘1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을 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 금융부채는 전 분기(201610~12)에 견줘 21조원 늘어난 15868천억원에 이른다. 가계부채를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비율인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에 178.95%로 사상 최고치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 OECD 회원국 29곳 가운데 한국은 9번째로 가계부채 비율이 높다. 신용이라는 이름 아래 미래를 가불해다 쓰도록 거듭 소비를 부추겨 왔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자본주의는 이윤이 노동자 착취에서 나오는 생산자 사회에서 이윤이 소비주의에 빠져든 욕망 착취에서 나오는 소비자 사회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를 하는 목적은 수요 충족을 막고, 충족을 갈망하는 더 많은 수요와 더 많은 잠재 고객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금융회사도 다를 바 없어 이들 입맛에 맞는 대출자는 융자금을 결코 다 갚지 않는 사람이다. 바우만은 오늘날 금융위기는 은행 실패에서 온 결과가 아니다. 반대로 빼어난 성공 과실이다. 곧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뭇사람들을 채무자로 변형시켜서 거둔 성공이라는 말이라고 꼬집는다.

 

소비=써 없애는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써 없애기만 하는 사람이다. 돈놀이 판에서 돈줄에 목을 매는 기업들은 소비, 빚을 내서라도 써 없애기만 하라고 달콤한 말로 속삭인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다. 찬찬히 짚어보면 우리가 소비자가 되고만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오래도록 늘 무엇을 짓거나 가꾸고 만들어 쓰며 살아왔다.

 

주택담보대출이 흔하지 않고 신용카드도 낯설며 집값도 안정되어 있던 시절, 사람들은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 맞춰 가계를 꾸리고 미래를 설계했다. 써야할 돈과 남겨 둬야할 돈을 가려서 빚을 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었다. 저축률도 높았다. 1987년 저축률은 2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으뜸으로 2000년까지 움직일 수 없는 1위였다. 이제는 아무도 저축을 해야 한다고 않는다. 대신 빚을 지라고 꼬드긴다. 그 덕분에 60%가 넘는 가구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 가운데 74%는 원리금 상환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1998년 가계부채 총액은 190조원 수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율은 55.8%였다. 그러던 것이 2016년에는 가계부채 1272조원으로 GDP 대비 가계대출 비중이 80%에 이른다. 중상위 계층은 집에 딸린 빚에, 저소득층은 고금리 대출에 허덕인다.

 

1997IMF 이후 심각한 경제문제를 푼다고 분별없이 남발한 카드 발급이 소비를 부추기다가 수없는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냈다. 처음엔 욕심나는 물건들을 할부로 살 수 있다는 데에 편리를 느꼈고, 점점 더 갖고 싶은 물건을 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하나면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 한 해에 몇 십 퍼센트나 이자가 나가는 높은 금리 대출까지 받게 되면서 사람들은 무너져 내렸다. 카드 돌려막기, 사채업자 추심. 그런데 요즘도 여전히 TV를 틀면 네가 바라는 돈을 재빨리 내어주겠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최근에 나온 카카오뱅크는 스마트폰 클릭만으로 한 달 만에 14천억원을 빌려줬다고 기염을 토한다. 이대로 괜찮을까?

 

다행스럽게도 요즘 사람들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 말도 반만 맞는다. 방향이 맞는다는 말은 어디론가 간다는데 초점이 맞춰있다. 가는데 집중하면 놓치는 것은 길을 가면서는 누릴 수 없다는 말이다. 삶은 바로 여기서 누리는 것인데 가닿는 데만 매달리다 보면 가고 있는 이 순간을 놓치고 만다. 부처님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놓은 것이 팔정도이다. 여기 나오는 바를 정가던 길 멈춰 서서 발밑을 살피고 또 살피고 나서 다시 나아간다는 뜻을 지닌 글씨다. 이제 우리는 가던 길 멈춰 서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왜 이 길을 가야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그리고 이 길이 아니라고 여겨지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뒤돌아볼 것도 없이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본디 삶으로 돌아가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아이슬란드 주요산업은 오래도록 고기잡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시스템이 바뀌면서 아이슬란드 사람들 삶이 송두리째 뒤집힌다. 2000년대 초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레버리지 차입, 인수·합병, 파생상품, 외환거래처럼 여러 가지 금융기법을 일러주며 아이슬란드 은행을 꼬드긴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고기 잡으며 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아이슬란드는 해외자본 투자 관련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였다. 투자가 쉽고 이자는 높으니 군침이 돈 해외투자자들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 자산을 다 합쳐야 수십억 달러(수조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3년 뒤 1400억 달러(154조원)가 됐다. 은행들은 고기잡이만 알던 이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쉽게 대출을 해줬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9배 커졌다. 수도 레이캬비크 부동산 값은 3배나 뛰었다. 가정 평균자산도 3년 만에 3배가 됐다. 경제가 한 해 7%가 넘도록 성장했다. 그러다가 2008년 갑자기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상환 능력이 없는데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놓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예금 지급불능으로 혼란에 빠졌다.

 

우리는 1997년 겪은 IMF 사태 때, 아이 돌반지까지 내어 놓아 부실은행을 살린다. 아울러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행주를 쥐어짜며 빚을 갚았다. 그런데 아이슬란드는 우리와는 달랐다. 3대 은행을 모두 파산시키고, 은행 경영자들에게 부실 책임을 물어 교도소에 처넣는다. 아이슬란드 정부도 처음엔 2009년 나라채무 35억유로를 영국과 네덜란드에 15년 동안 5.5% 금리로 갚겠다고 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세금으로 나랏빚을 갚기를 가로 막아서며 금융위기를 가져온 정부 규탄시위를 벌인다. 20103월 펼친 국민투표에서 93%남짓한 사람들이 빚 갚기를 거부했다.

 

규제를 풀고 일확천금을 꾸어보겠다고 나선 것이 헛된 꿈이라 판단한 사람들은 지름길 찾다가 있던 길도 잃어버린다.”며 어부로 돌아간다. 모든 고기잡이 터를 열어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아 팔 수 있도록 했다. 놀랍게도 몇 해 동안 길을 잃었던 어업은 다시 아이슬란드 주력 산업으로 자리 잡아 수출 42%를 차지한다. 이 모든 것을 아이슬란드 사람들 스스로 선택했다. 젊은이들은 자라 같은 브랜드 쇼핑을 내려놓고 뜨개질 붐을 일으켰다. 이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쉽게 돈 버는 길을 포기하고 땀 흘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삶으로 돌아갔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살아갈 사회를 스스로 골랐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게 위대한 멈춤, 거룩한 돌아섬이 아닐까. 어떤 이들은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0만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돌아설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그랬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겐 위대한 멈춤, 거룩한 돌아설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변택주 (작가)
작가. 경영코치로서 살림에 맞선 말은 ‘죽임’으로 ‘가정경영, 기업경영, 나라경영’ 모두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바탕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한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사람들’과 ‘으라차차 영세중립코리아’ 바라지를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등이 있다.
편집진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