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살림 9> 안정과 불안정, 어떤 게 살림일까?

경제/트렌드 - 변택주 (작가) | 2017. 제13

 

 

 일본에는 어디를 가도 꽃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뜻 보면, 일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나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 후반에만 해도 6000억 엔대였던 화훼시장 규모가 4200억 엔대로 쪼그라들 만큼 꽃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일본에 꽃집이 많다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쩐 일일까? 까닭은 바로 고령인구, 거기서도 여성 고령인구 때문이다. 일본에서 나이가 지긋한 여성이 신문지에 싼 꽃다발이나 화분을 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누구에게 선물하려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보며 즐기려고 지갑을 연다는 얘기다.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길어 홀로 늙어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꽃은 쓸쓸한 노후를 달래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안성맞춤이란 말이다.

 

 아울러 일본에서 꽃집만큼이나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병원이다. 그러나 소아과나 산부인과가 없는 기초지자체는 셀 수 없이 많다. 정형외과가 없는 동네는 없다고 할 만큼 많다. 까닭은 간단하다. 늙어갈수록 몸 이곳저곳이 저리거나 쑤시고 아파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늙어가면서 아픈데 없고 정서가 안정되면 더 할 나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아픈 구석 없이 꽃 몇 송이만 있으면 사는데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아니다. 치매노인일지라도 마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위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요양병원에 갇혀있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지난번 네덜란드 치매마을 호그벡 얘기에서 알 수 있었다. 하물며 멀쩡한 늙은이들이 소일거리 없이 벽만 보고 늙어간다는 것은 살아도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버들버들하던 몸이 꽃꽃해졌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바탕을 헤아려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안정을 바라고 불안정을 싫어한다. 아울러 확실한 것을 좋아하고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참으로 그럴까?

 

 조선, 방랑시인 김삿갓이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날이 저물고 온종일 굶어 배가 등짝에 달라붙어 죽을 지경이다. 밤이 깊어 삼경, 저만치 불빛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가 보니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인을 찾으니 상주가 나와 방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김삿갓은 상중인데 염치없지만 무엇이든 먹을 것을 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상주는 저는 본디 미천하여 부고 한 장 쓸 줄 몰라 어머님이 돌아가셨어도 친지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는 참입니다. 없는 찬이나마 대접하겠으니, 부고를 써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고 한다. 어려울 게 뭐있느냐며 차려준 밥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 난 김삿갓. 막상 부고를 쓰려니 슬며시 꾀가 난다. ‘어차피 글을 모르기는 상을 당한 집이나 부고를 받을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써준 부고. ‘연월일시年月日時에 류류화화柳柳花花.’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때 버들버들하다 꽃꽃해졌다는 말로 버들버들하던 몸이 꼿꼿해졌으니죽었다는 뜻이다.

 

 짚어보자, 버들버들해서 불안정하던 것이 꼿꼿하고 딱딱해지면 안정된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 심장박동은 불안정하다. 달리면 더욱 불안정해진다. 의학드라마에서 심장박동이 일정간격으로 규칙을 갖추며 뛰다가 옆으로 쭉 이어지며 안정되는 순간 죽음이다. 삶은 앞날을 알 수 없어 불확실하지만 죽는 순간 확정된다. 다시 묻는다. 안정과 불안정 어느 쪽이 좋은가? 확실함과 불확실함, 어느 쪽에 서고 싶은가?

 

 우리는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는 말이다. 따뜻하면 살고 차가워지면 죽는다. 아울러 어울리면 살고 홀로 떨어지면 죽는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도시내기들은 더불어 살지 않아 옆집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른다. 요즘 도시화에 고령화까지 더해지며 활기를 잃는 마을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늙은이들이 힘 모아 마을을 살리겠다고 나서서 눈길을 모으는 곳이 있다. 늙어가는 이들이 마을공동체기업을 빚어 지역 자원으로 살길을 트고 있다. 고령화 문제를 스스로 넘어서는 늙은이 어깨동무 사업(seniors community business)’이다.

 

 살림,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마을 오가와무라는 인구 2,800여 명 가운데 1,200여 명이 65세가 넘은 고령마을이다. 오가와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세울 만한 뚜렷한 자원이 없는 마을로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 마을이 비어갔다.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궁리 끝에 오야키를 떠올린다. 향토 음식 오야키는 밀가루 반죽에 가지나 호박, 북부 나가노 명물인 노자와나를 비롯한 제철 채소 따위를 1년 동안 소금에 절인 뒤 만두소로 넣고 화덕(이로리)에 올려 30여 분 동안 구워서 만드는 만두다. 디저트로 안성맞춤인 팥앙금이나 사과도 있다. 오가와무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오야키를 비상식량으로 먹어왔다.

 

 

 

 1986년 오야키를 사업 아이템으로 하는 마을기업 오가와노쇼가 태어난다. 오가와노쇼는 일본 조몽 시대에 쓰던 화로 양식과 토기를 본떠 재래식 만두 굽기를 살려냈다. 이미 있던 양잠용 건물이나 마을 농협에서 쓰지 않은 건물을 공장으로 탈바꿈시켜 고풍스런 멋을 누리게 한다. 열린 공간에서는 화덕에서 만두 굽는 체험을 할 수도 있고 직접 구운 만두를 먹어볼 수도 있다.

 

 오가와노쇼는 직원 상당수가 60세가 넘은 늙은이다. 대부분 나이 든 주민들로 92세부터 50세까지 평균 나이가 65세다. 나이대가 높은 까닭은 전통 오야키 맛과 모양을 지키려면 직접 빗어 구울 수밖에 없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바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살림, 이 손 안에 있소이다. 오가와노쇼에서는 어르신들이 오야키를 빚고, 20~30대 청년 사원은 IT관련 업무를 하거나 땀 흘리며 몸을 쓰는 노동을 맡아한다.

 

 이제 오가와무라는 옛 맛을 그리워하는 일본사람뿐 아니라 일본 전통음식을 맛보길 바라는 외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 해에 5만여 명이 넘게 찾는 명소다. 2015년 기준으로 매출은 70억 원 남짓하다. 오가와무라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연합에 올라있다. ‘오가와노소 오야키 마을에서 오야키를 만들어 화덕 숯불에서 구워 뜨거울 때 바로 먹어야 제 맛이다. 오가와노쇼는 오야키 말고도 다른 향토 음식을 개발에 나서고 있다. 개발상품에 맞게 소바 마을’, ‘양조 마을처럼 마을 이름을 붙여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나뭇잎이 마을을 살리다

 온천장이 계곡 절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치가 뛰어난 가미카쓰 마을은 86%가 산림이어서 목재산업과 감귤을 비롯한 과수원이 발달한 곳이었다. 큰 어려움이 없던 이곳 경제가 급격히 몰락한 것은 1980년대 초 일본이 목재 수입시장을 열어젖힌 뒤부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례없는 한파가 덮쳐 감귤 농사까지 망쳤다. 눈앞이 캄캄한 마을 사람들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아이들은 자라면 너도 나도 마을을 떠났다. 공부 안 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혹독한 말은 너 공부 안 하면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폐촌 위기에 놓인 마을을 살려낸 사람은 일본 농협 직원이던 요코이시 도모지였다. ‘마을이 새롭게 태어나게 하려면 다른 데 살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마을 이장 요청에 따라 이곳에 왔다. 그 뒤로 여러 차례 시장조사 끝에 1987년 마을에서 나는 나뭇잎을 팔겠다면서 마을 기업 이로도리를 세운다. 그리고 음식과 함께 상에 오르는 츠마모노(장식용 나뭇잎)’ 320여 종을 내놔 올린 2016년 매출은 26억 원이나 된다. 이로도리 요코이시 대표 눈에 나뭇잎을 팔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우연이었다. 요코이시는 지역 농산물 판로를 뚫으려고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대도시에 나가 사람 만나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오사카 고급 식당에 들렸는데 젊은 여성이 초밥을 장식한 단풍잎을 손수건에 고이 싸서 핸드백에 넣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 저거야!’

 

 

 

 마을기업 이로도리생산자는 평균 나이 78세가 넘는 마을 늙은이들이다. 가미카쓰에 사는 늙은이들은 직접 PC나 태블릿을 써서 가미카쓰 정보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여기서 나라곳곳에서 들어오는 나뭇잎주문 내역을 확인해 시장에서 요구하는 나뭇잎을 그때그때마다 보내준다. 이 정보네트워크에서 누가 얼마나 팔았는지 서로 매출순위도 알 수 있어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봉이 김선달이 따로 있어야 할 까닭이 어디 있을까.

 

 “일을 하면서 아픈 데가 없어졌어요. 치매에 걸릴 일도 없죠. 일이 보약입니다. 이 나이에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에요. 예전에는 도시에 나간 자식들한테 용돈을 받아썼는데, 이제는 거꾸로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고 있어요.” 여든을 훌쩍 넘긴 마을 할머니 말씀이다.

 

 나뭇잎을 따다 팔면서 양로원에 가는 늙은이와 병든 늙은이가 줄어들었다고 알려지면서 벤치마킹하려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한 해에 4,000여 명이 넘는다. 아울러 나라곳곳에서 젊은 사람들이 인턴을 하겠다며 몰려든다. 늙은이들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지 않고 더불어 마을 살림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 여겨 손잡고 꾸려가는 살림살이가 마을과 늙은이들을 한꺼번에 살려냈다는 얘기다.

 

 그저 가만히 죽어갈 날을 기다리는 안정보다 불안정, 불확실에 맞닥뜨려서 얻는 열매다. 몸 살림과 뜻 살림은 나란히 간다. 움직여야 살고 멈추면 죽는다. 뜨거워야 살고 식으면 죽는다. 살리고 더하면 불어나는 게 세상이치, 동떨어지면 죽는다

변택주 (작가)
작가. 경영코치로서 살림에 맞선 말은 ‘죽임’으로 ‘가정경영, 기업경영, 나라경영’ 모두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바탕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한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사람들’과 ‘으라차차 영세중립코리아’ 바라지를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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