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인문학 열풍의 다음으로 명상의 전성기가 시작될 거라는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읽었다. 외국의 여러 큰 기업들에서 직원들에게 명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한국의 기업들도 점차 명상의 가능성을 눈여겨 볼텐데, 불교계는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아예 대기업들이 명상 시장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위기가 기회이듯, 기회는 위기다. 명상 열풍 속에서 불교의 가르침이 전해지기보다, 겉모습만 명상인 것들이 대중에게 퍼질 위험도 있다. 한국 불교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고, 또 해야 할까? 이 생각과 고민들을 3편의 글에 담아보려고 한다.
[1] 명상이 필요한 시대,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명상 [2] 한국의 명상 자격증들, 한국명상지도자협회 명상전문지도사 과정을 들으며 [3] 무한 상상, 100명의 청년 명상지도자를 만드는 방법 |
“명상의 본질을 말씀드리자면 그냥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겁니다. 그냥 앉아서 눈을 감고 주위에 무엇이 일어나든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의식을 하는 겁니다. 나의 몸과 마음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서 신경을 쏟는 것이죠. 내 마음은 계속 여러 가지 스토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그냥 허상이죠. 그냥 다 스토리고 픽션일 뿐입니다.(중략)
그런데 이게 저에게 개인으로서도 학자로서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세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요. 모든 이론이나 스토리 같은 것을 다 옆에 두고 그냥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려고 하죠.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 유발 하라리, 2016. 4. 28.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 강연 중에서
신대승 매거진을 통해 ‘명상’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늘 배움의 과정 중에 있고, 그래서 수많은 진실들에 대해서 ‘모른다’. 무언가 정답을 찾아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늘 유혹하지만, 그 마음이 우리의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한국에서 대화와 토론은 누가 더 옳은지를 따지거나, 한 쪽이 이기면 한 쪽이 지는 문제로 종종 변질되는데, 나는 이 글이 함께 더 나은 길을 찾아가는 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얼마 전 유발 하라리 교수의 강연에 다녀왔다. 2011년 ‘사피엔스’라는 책을 쓰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는,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대체할 새로운 인류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출현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명상에 관한 글을 쓰며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가 15년 이상 명상 수련을 해왔다는 사실을 강연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두 달씩은 아예 바깥 활동을 끊고 명상에 몰두하며, S. N. 고엔카센터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배웠다는 말을 했다.
‘위빠사나’ 소개(호두마을 홈페이지)
‘S. N. 고엔카’ 소개(담마코리아 위빠사나 명상센터 홈페이지)
나는 세계가 점점 더 명상을 필요로 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생각한다. 허핑턴포스트 페이스북에 올라온 ‘명상의 효과를 소개하는 동영상’부터 ‘뉴요커가 매일 운동을 하듯 명상을 한다’는 우먼센스의 글로벌리포트 기사까지, 도처에서 명상에 우호적인 이야기들을 듣는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영성이 중요해지고 또한 발달하는 시대로 가고 있음에 대한 주장과 근거는 유명한 경영사상가인 필립 코틀러나 통합심리학자인 켄 윌버의 책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명상은 어떤 이미지와 역할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 유발 하라리로 돌아온다. 급변하는 미래에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교실에 가서 질문을 던지고 토론을 합니다. 그러면 금방 학생 한 명이 손을 들어서, 그러면 시험에 이 문제가 나오면 제가 뭐라고 써야 되는 건가요, ‘정답’이 뭔가요라고 물어보게 됩니다. 항상 정답, 즉 확실성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자로서 바로 이런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물론 제가 교육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개혁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학생들에게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무지함도 받아들이고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받아들이고 편하게 느끼도록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반대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이라거나 여러 가지 평가제도 때문에 우리는 학생들한테 무지를 두려워하고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정답 없는 질문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첫 번째 일은 학교나 교실에서 무지와 불확실성에 대해서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과학과 종교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는 완벽한 스토리를 주려고 하죠. 예를 들면 신부님이나 목사님에게 가서 무언가 물어본다면 항상 이에 대한 답을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사실 종교에서 ‘그것은 우리도 모르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런데 학문, 과학에서 우리는 무지를 인정하죠. 빅뱅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모릅니다. 의식이 무엇인가요? 모릅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모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죠.“
무지와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명상 수행을 하고 불교정신치료를 가르치고 있는 전현수 신경정신과 원장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불교는 관찰의 종교’라는 말이 있었다. 세계적인 명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에서도, 과학자와 같은 마음으로 '그저' 관찰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적혀 있음을 본 기억이 난다. 깨달음으로 가는 8가지 바른 길(八正道) 중 첫 번째인 정견(正見)도 이와 같다. 마음이 지어내는 스토리들을 내려놓고,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우리는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그만큼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학부에서 명상(정확히는 선禪학)을 복수전공으로, 대학원에서는 주전공으로 공부하고 최근에는 한국명상지도자협회(www.kamto.net)의 명상전문지도사 과정을 듣고 있다. 우리 사회가 명상을 더 필요로 하는 때가 올 것에 대한 일련의 준비다. 불교라는 대지 아래 묻힌 빛나는 금맥과 같은 가르침들을 어떻게 꺼내고 다듬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할지가 나에게는 삶의 화두다. 그리고 이 고민 중에 깨달은 하나의 확신은 이 일들을 결코 ‘혼자’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있다. 이곳 신대승 네트워크도, 이제 시작하려는 붓다클래스도, 2년 전 모인 절오빠절언니도 그런 모임의 공간이고 관계이며 플랫폼이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10년 후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1년 후, 3년 후, 한국 불교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일은 어쩌면 가능할 것 같다. 한국 불교의 변화, 그리고 서로의 성장과 실천을 위한 대화가 오가기를 바라며, 나의 첫 번째 편지를 여기 놓아둔다.
명상을 추천하는 유발하라리 강연에 대한 자세한 후기와 영상(강민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