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참여불교사상가 술락 시바락사박사를 초청하여 시민사회 활동가와 불교활동가를 대상으로 ‘불교, 평화를 말하다-Role of Buddhist Peace Building in Asia’를 주제로 대화마당을 열었다. 4월 21일 월드컬쳐오픈 W_스테이지 안국에서 열린 대화마당은 대불련 총동문회, 불교환경연대, 신대승네트워크, 정의평화불교연대가 공동 주최하였고, 이정규님이 통역을 담당하였다. 술락 시바락사박사와 참석자들과의 대화 내용, 강연 후 기자 인터뷰 내용을 풀어 게재한다. |
1. 대화마당에서의 질의 응답 내용
Q. 한국불교는 불자 300만이 줄어 긴장하고 있다. 불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불교가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한국불교는 불자 300만 이탈에 대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그리고
한국 사회는 촛불집회 후 적폐청산이 과제라고 말한다. 술락 박사는 ‘적은 내안에 있다’고 했다. 적폐청산과 술락 박사의 말씀을 어떻게 연결해 이해해야 하나?(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
A. 불교뿐만 아니라 전통종교들이 모두 신자를 잃고 있다. 새로운 악이 등장했는데,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그것이다. 현대기술이 덧붙여지면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경쟁하려 한다. 심지어 스님들조차 돈을 많이 벌려하는 데 그런 것은 불교가 아니다. 많은 종교들 중에서 불교는 상당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른 종교는 교리, 교의 등의 도그마가 있어 믿어야 한다. 무슬림은 코란을 믿어야 하고, 개신교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가톨릭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성모를 믿어야 한다. 하지만 불자가 되려면 부처조차 믿지 않아도 된다. 저는 불자들이 부처님에 너무 집중하는 것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처님은 자신을 ‘친구’라고 말했다. 도반이요, 좋은 벗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과 이야기 나누고 논쟁하고 도전할 수도 있다. 도반이라는 개념 자체가 핵심이라 생각한다.
불자들이 도반의 개념을 현대사회로 가져온다면 불교가 번창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와 동등하게 말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특히 고통받는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한 것이다.
태국은 150년 전 스님만 30만 명에 달했다. 당시는 태국 인구가 800만이던 시대다. 지금 인구가 6,500만 명인데 여전히 스님은 30만이다. 하지만 스님들의 법력, ‘질’은 많이 떨어졌다. 스님은 금욕하고 계를 지켜야 하는 데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지키기 어렵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자각하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사회에서 되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스리랑카에서 다수종족인 싱할라 불교인들이 소수종족인 타밀타이거에 대립했다. 그러나 이제 일부 스님들은 타밀과 친구(도반)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구조적인 폭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사회에 가져올 수 없다. 그 첫 번째는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살생하지 않는다. 개인은 그렇지만, 정부가 너무 많은 무기를 소유하도록 우리가 허락하고 있다.
두 번째는 도둑질 하지 않아야 한다. 여러분은 알고 있나? 은행은 법적으로 훔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대사회로 가져올 수 없다. 제가 쓴 <지속가능성의 지혜-21세기 불교경제학>라는 책이 있다. 곧 한국에서도 번역 돼 나올 예정이다. 주류경제는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주류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 그래서 불교경제가 필요하다. 어떻게 만족하고, 어떻게 주류경제에 도전할 지. 그것은 종교나 교육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런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불교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거나 점점 줄어들 것이다.
선거는 연극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서구 제국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선거를 하지 않으면 민주적이지 않다고 믿는다. 붓다는 어떤 것도 쉽게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싱가폴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데, 지배정당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지배하고 있다. 부자로 살고 있지만 다 경제적인 동물이다. 왜냐면 싱가폴에서는 누구도 생각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에 도전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를 신뢰한다면 발언의 자유를 실천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나이든 사람들에게 구체제를 비판하라고 격려해야 한다. 친구들에게는 적들에게 마음을 열라고 해야 한다. 발언의 자유 없이는 선거의 의미가 없다.
발언의 자유 다음에는 도덕적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도덕적 용기는 고통 받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다. 소수자와 기층민을 보살피는 것이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가 가택연금 시절에는 훌륭한 분이라고 여겨졌다.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의 몸이 된 지금은 자신만 생각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있다. 로힝자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지 않다. 정치가 삶을 망치는 경우다. 그래서 큰 정치인들을 바라만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는 모두 불성이 있다. 도덕적 용기를 함양해야 한다. 발언의 자유를 얻고, 시스템에 도전해야 한다. 선거는 1등만 선택한다, 2, 3등은 나쁜 것이 된다. 우리는 미국의 오바마가 많은 것을 바꿀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한다. 이런 것들을 마음을 챙기면서 잘 살펴보아야 하고, 대안적인 정치를 찾아야 한다.
Q. 요한 갈퉁이 구조적 폭력을 없애야만 적극적 평화를 달성한다고 말했다.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 환경적 고를 없애려면 분노가 필요한데 경전은 분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대방편경에 보면 499명의 선원을 살리려고 499명의 선원을 죽이려던 선원을 설득하다가 안 되자 그 선원을 죽인 선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선장이 전생의 자신이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근거로 정의로운 분노도 이데올로기에 휩싸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중생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비로운 분노는 가능한 것 아닌가. 달라이라마도 지금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고, 구조적 폭력에 저항해야 많은 해결과 적극적 평화가 오지 않았을까. 어떻게 생각하나.(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A. 구조적 폭력이 핵심이라고 달라이라마도 이해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지도자여서 모든 사람이 그분을 모두가 우러러봤다. 그분이 정치지도자 역할을 지금 내려놓았다. 민주주의를 티베트에서 부흥하려 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엄청난 실험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티베트에서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다. 캠페인을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도자를 찾고 있다. 당신이 최고인 것 같다고 하면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구조적 폭력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나는 달라이라마가 코카콜라를 들고 있어 위험하다고 말린 적이 있다. 다국적기업이 코카콜라를 팔면서 다른 기업 음료들이 죽고 있다고 말하니 이해했다. 우리에겐 대안이 필요하다. 한국의 TV채널 등에서 불교를 부흥하기보다는 소비주의나 광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구조적 폭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런 것들을 다뤘으면 한다.
분노는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분노를 마음챙김으로 잘 살펴야 한다. 부패에 대해 화가 날 때 분노를 자애로 바꿔야 한다. 그냥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증오를 이해로 바꿔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으로 바꿀 수단도 있을 것이다.
Q. 로힝자족을 비롯해 세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차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논란이 뜨겁다. 차별금지에 대한 생각은. 그리고 조계종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조계종단의 행보를 어떻게 생각하나.(박아름 현대불교 기자)
A. 제가 한국과 한국불교의 상황에 대해 몰라 언급하기 싶진 않다. 다만, 법(law)은 조화를 진작해야 한다. 소수자에 대한 착취를 막는 법이 필요하다. 지혜로워야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무슬림이 결혼하려면 상대가 무슬림이어야 한다. 지금 미얀마에서 불교신자와 무슬림의 결혼을 반대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이는 인권 남용이다. 불자가 무슬림이 되고 싶거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야 한다. 다만 그 사람이 무슬림이 되건, 그리스도인이 되건 자기 내면의 평화를 함양할 조건을 갖고 있다.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Q. 평화를 이야기하면, 분노하지 않고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고 상대를 적으로 대하지 않고 연민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근원적 문제에 극렬히 저항하고 비타협적이어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모범을 찾기 어렵다. 잘못하는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저항하는 것이 어렵다. 분노 없는 평화로운 저항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칫 불의에 저항하는 동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평화를 말하면 마치 회색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화로운 저항이 어려운 문제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국장)
A. 분노는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분노하면 머리가 무뎌지고 집착을 일으킨다. 그럴 경우 정서적으로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을 배워야 한다. 거리를 둬야 명확히 볼 수 있고 상황이 바뀐다. 사람들은 달라이라마가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저는 달라이라마의 사례를 세상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랑, 진실, 자비심뿐이다. 중국인은 티베트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것은 중국도 한족이 아닌 지배를 수 천년동안 받았다. 중국인들도 왕조에 저항했다. 마오쩌둥이 와서 모든 것을 없앴다. 긍적정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이 파괴됐다. 중국인도 현명하여 수 천년동안 불교를 품었고, 유교, 도교도 번성했다. 중국인들이 곧 깨어날 것으로 본다. 중국인들과의 경험이 많지 않지만, 20년 전에 중국인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다수의 풀뿌리 조직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자가 되고 싶어 하는 중국인들도 있다. 공산당이 상당히 강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약화된 것 같다. 공산당원 중에는 달라이라마와 대화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중국도 자유로워지고 티베트도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자유로워지려면 독재가 나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자본주의, 소비주의가 나쁜 것을 알아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류 교육계와 언론이 좋지 않다. 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는 소규모지만 효과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Q. 불자는 바른 견해,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한다. 바른 견해는 무엇인지, 다른 종교인과 구별되는 불자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인가.(강성식 신대승네트워크 상임위원)
A. 팔정도의 첫 번째가 ‘정견’이다. 정견은 자아(에고)에 덜 집착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나무, 바다, 지구와도 연결돼 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존중해야 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이바지해야 한다. 그것이 정견의 시작이다. 팔정도의 여덟 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야 한다.
‘자기 정체성’은 유용하지만 해가 되기도 한다. 제 이름은 ‘술락 시바락사’인데, 이름이 있어 여러분이 나를 알지만, 그것 때문에 제가 더 월등하다고 생각하면 나쁘다. 정체성은 라벨(딱지)과 같기에 너무 진지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내가 불자여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느낀다면 나쁜 것이다. 불자라는 것 역시 라벨이다. 우리가 탐진치에서 깨어나면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불자니까 무슬림이나 그리스도인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다. 소승은 대승보다 본질에 더 다가갔고 우월하다고 말한다. 반대로 대승은 소승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티베트 불교는 의례도 많고, 보살도, 사찰도 많다. 이것이 티베트 불교의 정체성이다. 선불교에서는 그런 정체성이 없다. 선(수행)이 정체성이다. 이런 것이 선불교에게 맞는 정체성이라면 괜찮다. 언덕을 걸어 올라갈 때 티베트사람들은 따라가는 부대가 크고 많지만, 선불교는 혼자 올라간다. 어느 것이든 여러분에게 맞는 것을 하면 된다.
Q.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BBC PD도 했다. 자본주의적인 일상에 충실하다가 어떤 계기로 운동가로 전환했나. 운동가로 전환했어도 많은 유혹이 있었을 텐데, 처음 먹은 마음 유지한 것이 무엇인가(박병기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A. 개인적 이야기 많이 하고 싶진 않다. 누가 제 전기를 썼는데 곧 나올 것이다.(웃음) 84세인데, 그동안 삶이 많이 바뀌었다. 제 배경은 상당한 엘리트였지만, 제 삶을 180도 바꿨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제가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과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돈, 권력이 최고가 아니고 최고는 도반이라는 것이다. 저는 태국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도반이 많이 있다. 제 삶의 소명이 좋은 우정, 도반을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 무슬림, 무신앙인들까지 좋은 도반이 될 수 있고, 이들과 힘을 모으면, 이기심이 아닌 욕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키우며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에서 20년 동안 일했다. 좋은 친구들도 많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아웅산 수치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영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힘을 모았다. 독재 치하에서 미얀마 사람들은 고통을 많이 받았고 감금된 사람도 많았다. 젊은 친구들이 마음챙김, 용서, 자비를 수행하고 실천하면서 그들이 40대, 50대가 됐다. 그들이 희망이다.
Q.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병폐를 말했는데, 자본과 소비의 대안으로 전세계적으로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 태국 포티락 스님이 아쇽 공동체를 소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아쇽 공동체가 태국 주류불교의 병폐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지, 평화에 바람직한 모범인가.(법인 스님)
A. 샨티아쇽(Shanti Asoke)은 매우 훌륭한 운동이며 조직이다. 주류 불교교단에서는 이들을 축출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저항해 열심히 일했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은 아직 국가주의에 갇혀있는 한계가 있다. 국가주의를 내려놓고 더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작년에 그 공동체의 한 스님을, 좀 더 배우라고 한국에 보냈다. 또 이 공동체의 스님들을 인도의 암베드까르 불교와 연결하도록 했다. 암베드까르는 바로 인도 헌법을 기초한 분이다. 그는 불가촉천민이었고, 60년 전에 불자가 됐다. 불자가 된 후 50만 명의 불가촉천민이 불자가 됐다. 지금 인도에 수백만 불자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연락해 그들로부터 배우고 또 도와야 한다. 태국에서도 이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샨티아쇽 공동체 사람들이 인도로 가서 불가촉천민 불자들을 만났다. 많은 희망을 갖고 있다.
Q. 로힝자족 문제에 관심이 많다. 불교에서 발생하지 않아야 할 폭력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어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됐으면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박수영 불교환경연대 상근활동가)
A. 로힝자 이슈는 아주 복잡하다. 이 문제의 기원은 영국 제국주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방글라데시, 인도, 미얀마까지 연관돼 있다. 불행하게도 로힝자족을 원하는 나라가 어디에도 없다. 국제 사회가 이들을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 특히 불자들은 더욱 이해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미얀마 불자들이 로힝자족을 더 국가주의로 배척한다. 미얀마 불자들과 대화해야 하고, 방글라데시와 미얀마의 무슬림과도 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로힝자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많은 로힝자가 배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온다. 태국 해군이 태국에 로힝자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이들에게서 많은 돈을 받았다. 이런 착취가 만연되어 있다. 스스로를 불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로힝자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는 좋은 벗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교계언론 인터뷰 내용
Q. 당신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좋은 벗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길러내야 하는가.
A. 첫 번째는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마음챙김을 하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다른 관점에 대해 더 많이 들어야 한다. 더 많은 인내를 가져야 한다. 비난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만약에 여러분에게 신뢰를 가지게 되면 사람을 키우는 일이 쉬워진다.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Q. 불교는 큰 가르침이지만 세상의 인문사회의 지식, 과학기술, 경험 등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으면 도그마나 관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A. 우리는 과학적 지식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만 받아들여야 한다. 서구의 과학은 자기들만이 옳다고 하는데, 물질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이다. 과학기술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인 달을 볼 수 있겠지만, 정신적인 것을 볼 수는 없다. 붓다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서구의 과학에 대해 비판적이면 나아질 수 있다. 우리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위대한 것이라고 들어왔다. 기계파괴 운동이 중요하다. 기술 산업이 수공업을 파괴했다. 가족도 파괴했다. 어린이들조차 공장에 일하러 가야 했고, 부자들만 혜택을 받았다. 산업 발달이 어떤 면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원자재를 통해서 생산하는 사람은 의미가 없어졌다. 영국은 원자재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착취했다. 제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예이다. 사람들을 세뇌시켜 더 많을 것을 원하도록 한다. 불교는 그것을 해소하도록 해야 한다.
Q. 언론, 텔레비전은 광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구조에 속해 있다. 어떤 대안이 있을까?
A. 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는 긍정 부정의 측면 있다. 그들은 긍정적인 측면을 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서구의 자본가는 기독교인들이다. 기독교인들이 돈을 더 벌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록펠러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기독교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도와주고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의 자본주의적 접근이다. 불교적 접근은 다르다. 자본가(자본주의자)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기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한다. 노동자를 착취하며, 광고를 통해 그들의 제품을 사게 만든다.
불교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들이 있다. 자기 자신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노동자들을 친구로 여기고 또한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자기 것을 나누게 하고, 자연을 착취하지 않도록 한다. 광고로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다. 이런 자본가 그룹이 태국과 유럽에서 확장되고 있으며 NGO와 같이 일하고 있다.
미얀마가 개방되었을 때 이런 리더들을 수치와 만나게 해주었다. 이윤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정이 더 중요하다. 자연을 존중해야 하고, 노조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수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업들이 미얀마에 들어가 착취하고 있다.
Q. 교단과 불자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는가?
A. 첫째로, 재가자들은 스님들이 필요한지, 질문해야 한다. 기독교는 하느님과 연결하는 역할의 사제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세례를 받고, 사제가 결혼, 장례에 사제가 관여한다. 승려들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승려들은 소박한 삶을 살면 된다. 그런 삶이 재가자들의 모범이다. 만약에 승려들이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사제와 다름없다. 그들이 사제라고 하면 우리 불자들이 따라야 될 이유가 없다. 넌센스다.
태국에서 스님들은 탁발을 했다. 스님이 나쁘면 음식을 주지 않았다. 어쨌든 스님들은 재가자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쫓아내야 한다. 스님과 재가자 사이가 멀어졌다. 너무 소비와 자본주의에 따라가고 있다. 스님들은 명상할 시간이 없고, 탐욕스러워졌다. 태국에서는 스님들의 평판이 좋지 않다. 그런 가운데 샨티 아속(Santi Asoke)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활동하는 좋은 사례다. 엄격히 채식을 하고, 기부를 받지 않는다. 스님들은 돈을 만질 수 없게 돼 있다.
Q. NGO도 변질되는 경우가 있나?
A. 담마까야라는 단체가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스님이 설립했다. 태국에서 스님은 대개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그 스님들은 의욕이 앞서 자신들이 세계불교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또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 단체는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부패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자만했던 것이다. 나는 담마까야를 심각하게 비판했다. 지금 주지는 몸을 숨기고 있다. 지금 검찰이 그를 체포하려고 한다.
Q. 50년 이상 불교운동을 해왔다. 아시아 평화에 어떻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는가?
A. 대부분 실패했다.(웃음)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스님 백여 명을 배출했다. 모두 나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탄압받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대만의 차오웨이 비구니는 레즈비언의 결혼을 주재하고 있다. 그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결혼은 서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성만의 결혼에 한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