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시민사회, 원전건설 막아내다

생명/생태/기후 - 민정희 (INEB 이사) | 2017. 제11

 

 약 2주 전에 ICE(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의 자문위원이자 INEB 이사인 나이절 크로홀(Nigel Crawhall)이 '남아공 법원이 남아공의 원전건설 계획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2014년 공정의 98%를 마친 원전 건설을 중단시킨 대만 시민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남아공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원전 건설을 저지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대만은 20여년간 시민들이 투쟁을 통해서 정부의 원전 건설중단을 이끌어낸 반면, 남아공의 시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한 법정소송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소 개수가 4번째로 많고, 원전 밀집도에서 최고를 자랑한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과 원전폐기 비용을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원전은 사양산업이 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원전이 신설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을 저지한 대만이나 남아공의 시민들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남아공의 원전 저지를 이끌어낸 단체들은 종교간대화기구인 남아공종교환경협회(SAFCEI)’지구의 생명(Earthlife)’으로, 소송을 제기한지 36개월만에 승소했다. 사실상 소송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단체는 SAFCEI였는데, 작은 종교단체임에도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놀랄만한 일이다. SAFCEI는 지난해 하와이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 기간 중 만난 비구니 촌드루(Tsondru) 스님이 소속된 단체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매주 월요일 원전반대 집회를 열어왔다. 촌드루 스님은 탈핵 운동하는 한국의 단체들과도 교류하고 싶다고 하셨고, 나와도 자주 연락하자고 하셨지만, 서로 바빠서 작년 이후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다.

 

 남아공에서 원전 도입계획이 발표된 시기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의장이기도 한 남아공의 대통령 제이컵 주마(Jacob Zuma)2014년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과 만난 직후다. 당시 주마 대통령은 2030년까지 총 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현재 남아공에는 1기의 상업용 원전이 있다.

 

 원자력발전소 도입계획이 발표된 후, 러시아, 한국, 중국, 프랑스가 입찰에 응하였고, 원전 건설 경비조달을 책임지겠다고 한 러시아와 중국 기업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 법원의 판결문에 한국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남아공의 원전건설 관련 기술적인 부문에서 관여하기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법원의 판결문에는 러시아, 미국, 한국과의 정부간 협약이 갖는 비밀의안 상정은 위헌이고 불법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마 대통령의 원전발표 계획은 이후 전 국민적인 의혹과 우려를 낳았다. 그 이유는 주마 대통령이 여러 부패 스캔들에 이미 연루된바 있었고, 요하네스버그에 우라늄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굽타(Gupta)’패밀리가 주마 대통령을 재정적으로 지원해온데다 그 동안 대통령의 부패스캔들에도 관여해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따라서 남아공 시민들은 원전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주마대통령,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굽타패밀리가 부정한 이익을 취할 것임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또한 대다수 시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 남아공이 엄청난 부채를 지고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원전 건설비용만 730억 달러(한화 약 84조원)로 추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은 원전이 건설되면 싼값에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도 믿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정부 내에서 조차 원전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관료들이 있었다. 이에 주마 대통령은 2월에 있었던 소송의 마지막 변론 직후, 원전을 반대해온 재무부장관과 에너지부장관을 경질한 후 개각을 단행하였고, 이것이 대규모 시위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법원이 원전건설 계획 철회에 대한 소송에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은, 원전건설 계획과 준비에서 남아공정부의 행동이 투명하지 않았고 시민들과의 협의를 무시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법원은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시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 또는 국가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의 경우, 정부가 의회에서 논의해야 하고, 완전히 투명한 절차와 더불어 시민들과 협의를 거쳐야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소송의 승리에 대해서 SAFCEI 설립자 제프 데이비스(Geoff Davies) 주교는 결과에 대해서 매우 기쁘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 유예에 불과하지 않는다. 거의 매일 새로 드러나는 부패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슬프다. 지구의 보호자로서, 우리는 남아공의 모든 시민들을 위해 우리의 국가 지도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논평하였다.

 

 원전 소송에서 승소한 남아공의 사례는 한마디로 정의와 법치, 그리고 남아공 시민사회의 승리라고 할만 하다. 남아공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법정에서도 그러한 법치와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한국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을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한국에서도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환경법률센터등이 중심이 되어,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결정 무효화를 위한 소송을 제기하여 진행하고 있다. 수명이 다한 노후원전의 폐쇄는 당연한 것이어야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원전의 고장율은 월 1회 정도 된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고장율을 보이는 고리원전 1호기는 다행히도 폐쇄가 결정되었으나 해체비용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원전에 의해 생산된 발전단가(1kWh)66원으로 석탄(72), 석유(107), LNG(91)에 비해 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원전 해체비용, 방사성폐기물처리 비용, 그리고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를 고려한다면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결코 싸지 않다는 점이다. 잦은 고장에 따른 안전성도 문제다. 특히 한반도도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음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에 원전의 점진적인 폐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환의 대안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년전 월성원전을 방문하여 원전 근처에서 사는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 가운데 몇몇 주민은 암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주민들은 방사능 피폭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계는 물론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대부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사용된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원전 주변 주민들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59일 대선을 앞두고 1명의 후보를 제외한 유력 대선후보 주자들 대부분은 원전을 점차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거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공약은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시민사회에서 추진해온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인 서명운동처럼,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한 시민들의 자각을 불러오고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과정이 계속된다면 한반도에서 탈핵의 그날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민정희 (INEB 이사)
대불련 지도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노동위 간사, 참여불교재가연대 국제협력국장,로터스월드 사무국장,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정책홍보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기후생태(ICE)네트워크> 사무국장, INEB 이사, 아시아불교씽크탱크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2년 스리랑카에서 열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종교간대화’ 참석 이후 기후변화 대응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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