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살림 7_씨앗 같은 물음이 바꾸는 누리 결

경제/트렌드 - 변택주 (작가) | 2017. 제11

 

 

어쩌면 시리아가 공습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난민 780만 명 시리아 내전. 2013821일 시리아 정부군 화학무기 사용, 1,300여명이 숨 거둬. ‘국제사회, 시리아에 살상무기 포기 촉구’. ‘미국 군사 개입 결정’. 99일 미 국무장관 존 케리 기자회견.

공습은 언제 이뤄집니까?”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시리아 맞대응은 고려하지 않습니까?”

 

긴장감이 흐르고 조용히 손을 든 여성 기자 한 사람

조금 결이 다른 물음인데요. 어찌하면 시리아가 공습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기자회견장에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심각한 상황에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이냐는 듯 비웃음마저 터져 나왔는데. 잠자코 있던 케리 국무장관이 말문을 연다

시리아가 가지고 있는 살상 무기를 다 내놓는다면 공습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시리아 대통령이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군요.”

 

몇 시간 뒤 러시아 긴급 기자회견

시리아에 요청합니다. 가지고 있는 살상 무기를 국제기구 감시 아래 차차 없애기 바랍니다.” 

 

곧바로 이어진 시리아 기자회견

러시아 제안을 받아들여 바람직한 쪽으로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틀 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공습 취소 대국민연설을 한다. 일촉즉발로 치닫던 공습위기를 벗어날 물꼬를 튼 건 협상도 전쟁도 아닌 물음 하나였다.

 

기자들은 앞 다퉈 송고했다.

수백만 명을 살린 미국 기자

그녀를 비웃은 자 누구인가?”

진정한 외교를 알리다

 

주인공은 CBS 앵커이자 기자인 마거릿 브레넌. 

그 긴박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물을 수 있었어요?” 

참으로 제가 공습을 막았을까요? 글쎄요그냥 궁금했습니다. 애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태를 막을 길이 없는지 물었을 뿐이에요.”

 

살림씨앗이 된 물음. 우리는 한 세상 살아가면서 살림씨앗이 될 수 있는 물음을 얼마나 던질 수 있을까?

 

다 벗겨내고 알맹이만 팔 수는 없을까?”

 

사드배치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요즘은 중국관광객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바로 그 직전인 올해 212일 제주 시민 한 사람은 SNS에 중국관광객들이 까 버리고 간 쓰레기더미 수북한 제주공항 사진을 올려 여러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날 제주공항 국제선 대합실에서는 쓰레기가 100리터들이 100여 개 분량이 나왔단다. 이때 언뜻 면세품을 포장이 되어 있는 것과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두 가지로 내놓아 사는 사람이 골라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레나 글림보브스키Milena Glimbovski는 베를린 예술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채식식품전문유통업계에서 일하다가 식품 포장 그릇 따위가 쓸데없이 많이 나와 늘 애가 쓰였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라 울프Sara Wolf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다 벗겨내고 알맹이만 팔수 없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포장 벗긴 슈퍼마켓이라는 사업계획서를 꾸며 베를린 중소기업 진흥원 창업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클라우드 펀딩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뜻밖에 4천여 명 남짓한 사람이 몰려들어 처음에 생각했던 45,000유로(72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115,000유로(17000만 원)나 모였다. 2014913일 베를린에 1호점을 열었다. ‘오리지널 언페어팍트original-unverpackt’.

 

쓸 만큼 사가시되, 담을 그릇은 가져오세요!” 포장지, 용기 벗겨(package free)내고 알맹이만 팔아 미리 되살리자는 슈퍼마켓. 쓰레기가 된 뒤에 되살려 쓰자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빈 통, 빈 봉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프리사이클링precycling’을 이룬다미처 담을 그릇을 가져가지 못한 이들은 그릇을 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빌려가고 뒷날 돌려주면 된다.

 

‘Original Unverpackt’1인가구가 30퍼센트에 가까워지는 요즘, 조금만 사도되는 좋은 가게로 독일을 찾는 이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됐다. 연간 1,600만 톤에 이르는 독일 쓰레기를 줄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문을 연 이곳은 소비자 호응이 이어지면서 5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프리사이클링이 유럽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201511월 프랑스 파리에도 포장 벗긴 식료품점 비오콥21Biocoop21’이 두 달 동안 실험 운영을 했는데,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몇 달 더 운영을 늘리기도 했다. 손님이 보증금을 내고 빌린 병에 식초, 와인, 맥주를 담아 파는 장 부테유Jean Bouteille’숍 인 숍으로, 프랑스와 벨기에 친환경식품 전문점 7곳에 입점해 있다. 이탈리아 고급 식료품 체인점 에페코르타Effecorta’는 파스타를 커다란 통에 담아놓고 손님이 들고 온 봉지나 용기에 담아가도록 했다. ‘프리사이클링 가게는 미국에서도 관심을 얻고 있다. 지난해 콜로라도 덴버에 문 연 제로 마켓(Zero Market)’은 신선식품과 세제, 비누를 포장 없이 판다. 아울러 뉴욕에도 필러리the Fillery’가 문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사고픈 만큼만 골라(pick) 갈 수 없을까?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활폐기물 가운데 포장 쓰레기 비중은 중량 기준 32%, 부피 기준 50%나 된다. 포장 벗긴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쓰레기 없이 살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홍지선과 송경호, 두 젊은이가 어깨동무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받은 포장 벗긴 가게가 지난해 여름 문을 열었다. 성수동에 있는 더 피커the picker’. 피커에는 사는 사람이 사고픈 만큼만 골라(pick) 갈 수 있다는 뜻과, ‘수확, 거둬들이는 사람이란 뜻이 나란하다.

 

가게에 놓인 모든 것은 갈라놓거나 벌거벗은 채로 가지런하다. 사는 사람이 가져온 그릇에 사고 싶은 만큼만 담아 무게를 달아 셈을 치른다. 백미, 현미, 찰흑미, 서리태와 같은 국산 곡식과 과일, 채소는 국내 영농조합이나 사회적기업에서 들여오는데 모두 친환경유기농 농법으로 기른 것이다. 과일과 채소, 견과류로 만든 샐러드와 음료수도 팔고 있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까닭은 식재료를 20kg에서 80kg까지 한꺼번에 사오기 때문이란다.

 

이곳에는 여느 가게에 흔한 비닐봉지를 볼 수 없다장바구니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석 달이면 자연 분해되는 옥수수 추출물대나무 펄프로 만든 친환경 생분해성 그릇을 사서 담아가야한다레스토랑에서 음료수를 마신 스테인리스 빨대는 물에 헹구어 다시 쓴다화장실에 있는 휴지는 되살린 종이로 만들어진 것을 쓰고세제 또한 커다란 통에 담긴 것을 사서 쓸 만큼 덜어 쓰며 가게 살림을 하면서 쓰레기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문제는 더 피커가 서울 성수동에 하나 밖에 없다는데 있다. 다른 곳에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서 포장재를 다 벗겨버리고 고기나 우유, 양념을 비롯해 물기 있는 것은 유리그릇에 담고, 쌀이나 채소, 과일 같은 것들은 가방에 넣어 가지고 오도록 한다면 제조업체들도 거추장스런 포장재를 없애려고 궁리하지 않을까?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살 순 없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베아 존슨네 식구들은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하고 머리를 맞댔다. 그렇게 발걸음을 뗀 쓰레기 없는 삶(Zero Waste Lifestyle)’_생활용품을 꼭 쓸 만큼만 사고, 다시 쓰거나 되살려 쓰기. 놀랍게도 한 해가 지나고 집에서 나온 일쓰레기를 모두 합쳤는데 잼 병 하나에 다 담겼다.

 

존슨네 식구들은 모든 물건을 미리 가져간 유리병과 버리는 옷을 잘라 만든 가방에 담아온다. 고기나 우유, 양념은 유리병에 담고, 쌀이나 파스타, 채소는 가방에 넣어온다. 베아 존슨은 블로그에서 그저 물병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비닐 포장을 쓰지 않는 싱그러운 제품을 살 수 있다.”고 웃는다.

  

쓰레기 줄이기 다섯 가지 열쇠말(5R)만 머리에 담으면 된다. Refuse: 처음부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니면 사지 않고, Reduce: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 쓸 만큼만 쓰고, Reuse: 한 번 쓰고 버리지 않고 되쓰고, Recycle: 되쓸 수 없다면 다른 것으로 탈바꿈해 쓰고, Rot(or Compost): 버려야할 것들은 삭혀서 거름으로 쓴다.

 

누리살림공동체, 누리살림경제(사회적 경제)가 아무리 그럴 듯해도 여리고 서툰 걸음을 내딛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작은 발자국 하나 내딛기, 더없이 큰 걸음이다. 참나무 씨앗이 더없이 작고 가볍기 그지없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나면 아름드리로 자라듯이 씨앗 같은 물음을 화두 삼아 내디뎌보면 어떨까

변택주 (작가)
작가. 경영코치로서 살림에 맞선 말은 ‘죽임’으로 ‘가정경영, 기업경영, 나라경영’ 모두 너를 살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바탕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한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사람들’과 ‘으라차차 영세중립코리아’ 바라지를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법정 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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