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을 걷다-13> 인왕산과 옥류동천 길<3>

인문/기행 - 최연 (사단법인 해아라 이사장) | 2016. 제5
 - 수성동계곡과 기린교

  사직단(社稷壇)은 토지의 신()과 오곡의 신()에게 제사지내던 곳입니다.

고대국가에서는 임금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해서 대대로 세습이 되었으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의 씨가 마르지 않게 대를 잘 잇게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비옥한 토지와 튼실한 씨앗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궁궐을 중심으로 임금의 조상 위패를 모시는 곳을(宗廟) 왼쪽에 두고 조상의 음덕으로 대를 잘 이을 수 있도록 기원했으며 오른쪽에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지내는 곳을(社稷壇) 두어(左廟右社) 임금이 친히 납시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필운대는 백사 이항복의 집터로서 원래는 장인인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이었으며 지금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 세 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직단(사진: 필자 제공) 

  

 인왕산 왕기 누르려 지은 세 궁궐-인경궁, 자수궁, 경덕궁   

  왼쪽에는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집을 지을 때 감독관으로 보이는 동추(同樞) 박효관(朴孝寬) 9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고 오른쪽 위에는 백사 이항복의 후손인 월성(月城) 이유원(李裕元)이 쓴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살던 옛집에 후손이 찾아왔더니, 푸른 바위에는 흰 구름이 깊이 잠겼고, 끼쳐진 풍속이 백년토록 전해오니, 옛 어른들의 의관이 지금껏 그 흔적을 남겼구나. (我祖舊居後裔尋, 蒼松石壁白雲深. 遺風不盡百年久, 父老衣冠古亦今)”

 

  광해군(光海君)은 임진왜란 이후 파주 교하(交河)에 신궁(新宮)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때마침 풍수지리가인 성지(性智)와 시문용(施文用) 등이 인왕산왕기설(仁旺山王氣說)을 강력히 주장하자 인왕산의 왕기를 누르기 위하여 1616(광해군 8)에 인왕산 기슭의 민가를 헐고 승군을 징발하여 인경궁(仁慶宮), 자수궁(慈壽宮), 경덕궁(慶德宮, 경희궁) 등 세 궁궐을 지었습니다.

 

  인경궁은 사직동 부근에, 자수궁은 한양오학의 하나였던 북학(北學)의 자리에, 경덕궁은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定遠君, 元宗으로 追尊)의 사저에 지었으나 인조반정 뒤, 경덕궁만 남겨두고 인경궁과 자수궁을 폐지하였는데 인경궁은 1648(인조 26)에 청인(淸人)들의 요구로 홍제원(弘濟院)에 역참(驛站)을 만들 때 청나라 사신들의 숙소 등의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하여 인경궁과 태평관(太平館)의 건물을 허물어 재목과 기와를 사용하였습니다.

 

  자수궁은 자수원(慈壽院)이라 이름을 고친 뒤 이원(尼院 : 僧房)이 되었는데 후궁 중에서 아들이 없는 이는 이원에 들어와 있게 하였으므로 한때 5,000여 명의 여승이 살았으며 1661(현종 2)에 여승의 폐해가 심하여 부제학 유계(兪棨)의 상계(上啓)로 폐지되면서 어린이들은 환속시키고 늙은이들은 성 밖으로 옮겼고, 1663년 자수원의 재목으로 성균관 서쪽에 비천당(丕闡堂)을 세우고, 또 일량재(一兩齋)와 벽입재(闢入齋)를 세웠습니다  

   

  수성동 계곡과 기린교

  

 인왕산 아래 첫 계곡 수성동과 기린교  

 인왕산 아래의 첫 번째 계곡인 수성동은 종로구 옥인동과 누상동의 경계에 자리하며 조선시대에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 하여 수성동(水聲洞)으로 불리게 되었고 수성동의 ()’은 달리 동천(洞天)이라 하는데 행정단위가 아니라 골짜기 또는 계곡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 인왕산의 물줄기는 크게 수성동과 옥류동으로 나뉘어 흘렀는데, 이 물줄기들이 기린교(麒麟橋)에서 합류하여 청계천으로 유입되었고 물줄기가 흐르는 하천 바닥은 대부분 기반암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오랜 기간에 걸친 침식작용으로 인해 암반의 표면은 매끈하며 부드럽습니다.

 

  수성동은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여름철에 모여 탁족과 휴양을 즐기던 계곡으로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수성동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한 장소가 되었으며 장동은 지금의 종로구 효자동과 청운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입니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 <한경지략(漢京識略)> 등에서 명승지로 소개되었고, 당시의 풍경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전통적 경승지로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계곡 아래에 걸려 있는 돌다리인 기린교는 한양도성 안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원형대로 보존된 통 돌로 만든 제일 긴 다리라는 점에서 교량사적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최연 (사단법인 해아라 이사장)
젊은 시절 불교사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고 참으로 오랜 세월을 몸부림치다가, 혹여 변화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정치에 잠시 기웃거리다가 나와서, 인문학에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옛 동지들이 신대승의 기치를 내걸어 그 길을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해 국민운동체인 ‘민주주의 국민행동’ 기획위원장,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생존을 위해 사단법인 ‘해아라’이사장,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서울학교, 고을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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