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보다 이른 무더위가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편집진 편지 - 김시열 (편집위원) 창간호

 

 예전보다 이른 무더위가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다.

 그리고 날씨만큼이나, 아니 날씨보다 더 무거운 건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사회 저변에 스멀스멀 흐르는 비관과 절망, 위기의식이 모두를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일찍 찾아왔건, 더 무덥고 길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찜통더위를, 여름을 버텨낼 수 있다. 이처럼 끝이 보이는 터널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고난의 여정이지만, 끝을 예측할 수 없는 터널은 공포일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各自圖生), 2016년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 놓인 현실이다. 모든 가치들을 뒤로 밀어내고 오로지 생존만이 최고의 선이 되어버린 각박한 세상이다.
 폭력적 현실 앞에 내던져진 개인들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돌려진다. 공부를 못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해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서, 눈이 높아서, 성실하지 못해서 ……

 인간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이런 현실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다른 사람의 사정에 신경쓰지 마라’고, ‘오로지 너와 너의 가족만을 생각하라’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편법이나 반칙도 서슴지 마라’고, ‘이기는 것만이 정의다’고, ‘눈앞의 이해득실만을 생각하라’고 …… 인간을 철저하게 파편화, 고립화, 단순화시키는 마구니의 속삭임이다. 또한 천박한 자본의 전략이기도 하다.

 불교의 목적은 일체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함)에 있다. 나아가 대승불교의 아이콘인 보살은 자타불이(自他不二), 나와 다른 사람을 둘로 보지 않는 마음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따라서 중생의 아픔에 눈을 감으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면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생을 위해 미련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거창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껏 서로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편집자가 생각하는 신대승불교는 이처럼 소박하다. 말인즉슨 소박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려움과 유혹 속에서도 모두가 초발심을 잃지 않고, 서로 좋은 도반이 되어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이것이 편집자가 신대승-매거진을 통해 꿈꾸는 세상이다.


김시열 (편집위원)
느지막히 군대(방위)를 다녀온 후 줄곧 불교 책을 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만들며 붓다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과 생각을 훔쳐보는 재미로 한 세월을 보내는 중. 부처님의 정법이 올바르게 구현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기를 희망하며....<현직>주로 불교 책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도서출판 운주사>와 동양고전과 인문학 책을 출판하는 <자유문고> 대표직을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