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인불교, 에세이불교에서 벗어나 세상의 고통을 직면하는 불교로
신대승 11월 어울림법석의 재가 선지식으로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를 모셨습니다.
윤성식 교수는 법석의 문을 열면서 “붓다의 나라인 인도에서 왜 불교가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심각한 상황에 처한 한국불교의 현실을 얘기하기 위해, 도인불교, 에세이불교인 한국불교도 그러할 수 있기에 “붓다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불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고령화된 불자들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반면, 청년 등 새로운 불자의 유입이 없는 것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도 불교에 실망하고 떠나는 불자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불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불교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뉴진스님과 같은 이벤트성으로는 청년들의 관심은 잠시 끌 수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불교는 매우 매력 있는 종교로 과학을 품을 수 있습니다. 아이슈타인은 붓다를 과학의 아버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붓다께서는 당신의 깨달음을 보여줄 수 있고, 검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가지신 분입니다. 설혹 과학과 불교가 충돌해도, 경전의 개방성 때문에 해소가 가능하므로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다른 종교에 비해 대단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 출연한 랭카스터 교수에게 사회자가 “불교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랭카스터 교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라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혁신적인 붓다의 불교가 어느 순간부터 변화지 않고, 불교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선을 세상과 동떨어져 신비화하는 "도인불교", 고통은 외면한 채 번지르르한 말한 하는 "에세이불교"로 빠져 보수화됨으로써 청년층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불교는 고에 천착하고 고의 해결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문학작품에서도 고통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반면 한국불교는 세상의 고통에 천착하고 있지 않다고 안타까워 합니다.
불교는 고통에 응답해야 하며, 길을 열어야 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자기수행과 더불어 일상에서의 사회적 실천도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 붓다께서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당신께서는 왕에게 조언도 하고 비판도 하였으며, 전쟁에 나가는 군대를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경제생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재가자는 바른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의 고통은 세상의 정치 경제적 현실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는 인간을 무리지어(정치), 탐욕을 추구하는(경제) 존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중생의 세간사인 정치 경제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경제를 외면하고 중생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도 없기에, 바람직한 정치와 경제의 모습과 그러한 세상을 위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실천에 나가는 것이 불자들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고, 정치경제가 불교와 둘이 아님을 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윤성식 교수는 엄격하게 고행을 해야 한다는 데바닷다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여성 출가를 허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한 혁신적 불교가 지금은 고루한 불교가 되었다며, 불교의 심각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혁신적 마인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렇다고 성공한 기독교를 벤치마킹 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합니다.
특히 생활 속에서 불교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적용하고 전파하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신대승네트워크 6바라밀과 10대 생활수행약속의 실천도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간 내서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할 때, 걸을 때, 횡단보도 앞에 있을 때 등 일상의 행주좌와에서 호흡과 감각을 챙기는 것에 집중해 보라고 합니다. 시간 내서 명상한다고 하면 바쁘거나 일이 있으면 명상을 못하게 되어 명상과 삶이 유리된다고, 그것은 불교의 명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공동체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될 때, 특히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면 다수결보다는 만장일치를 지향해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붓다 당시에는 상가의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였으나, 붓다 사후 시주물 처리에 대한 의견 차이로 근본분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때 다수결로 처리함으로써 동의하지 않은 소수가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붓다께서는 자자포살시에 항상 자신을 먼저 비판대에 올려놓고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을 도반으로 칭하시고 신격화하는 것에 반대하였습니다. 불자들은 이러한 붓다의 삶으로부터 바른 실천수행의 자세를 배워 자기 수행과 사회적 실천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면서 법석을 마무리하였습니다.
*12월 법석(12. 7. 토. 오후 3시. 불교환경연대 교육장)은 송년법석으로 진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