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양사회사상적 사회변동이론 試論 - 인간적·사회적 마음 구성체의 변동을 중심으로 -

학문/교육 -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 2021. 제30

1. 서론

 

하버마스와 더불어 사회이론의 언어학적 전회를 이끈 루만은 체계이론적 진화이론이라는 고유한 사회변동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변화하는 환경작동하는 사회적 체계의 관계를 변이, 선택, ()안정화라는 진화론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사회적 체계의 작동과 분화를 소통매체의 변화와 연관시켜 설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소통이론적 사회변동 모델을 적용하여 역사적 사회가 분절적 분화, 계층적 분화, 기능적 분화 등으로 변동해 왔음을 설득력 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루만은 분절적 분화, 계층적 분화, 그리고 기능적 분화 등의 사회변동 모델은 서구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설명하는 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루만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지에 존재했던 제국을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분화 유형의 결합이나 전혀 다른 유형의 사회분화 유형이 요구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분절적 사회를 설명하는 사회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1).

이러한 루만의 탈서구 보편이론적 문제의식은 최근의 탈식민주의 사회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유승무는 이 흐름과 맥락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최근 세계 다양한 지역의 사회학자들이 기존 사회학의 서구중심주의를 지양하고 극복해보려는 과감한 시도를 함으로써 사회학의 탈식민화 혹은 탈식민주의의 사회학화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2007년 사회이론의 고전을 해체하려고 시도한 코넬(Connell), 2007년 근대성의 패러다임에 빠져 있는 기존 사회학을 지양하고 연결된 역사(connected histories)란 시각에서 역사사회학의 새로운 시각을 개척한 밤브라(Bhambra), 2013년 사회학과 제국주의의 관계를 파헤친 스타인메츠(Steinmetz), 2013년 사회학의 인식론적 전제들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포스트식민주의 사회학의 가능성을 탐색한 줄리언 고(Go)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점점 더 많은 지구촌의 사회학자들이 서구의 근대적 지식이론으로 무장한 기존의 사회학이 배제하고 있거나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영역이 존재함을 자각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서구사회학만으로는 불평등, 차별과 배제, 환경 및 생태문제, 소외문제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유승무, 2020: 2)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변동이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사회학계도 그간의 근대 서구사회에 경도된 지적 편향과 식민지성을 지양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사회변동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사회변동이론, 즉 탈서구 보편이론으로서의 사회변동이론을 탐구하는 것에 대한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사회()학계에서는 서구사회와는 다른 발전 유형과 경로를 갖고 있는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사회변동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2).

이러한 한국사회학계의 식민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사회이론을 과감하게 모색하는 학문적 시도들을 축적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마치 서구의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한국학을 개척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한국사회를 마음사회로 규정할 수 있다는 인식3)을 토대로 인간적·사회적 마음 구성체(The human and social formation of heart)’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동양사회사상적 사회변동이론을 시론적 차원에서 제시해보려고 한다.

 

 

2. 인간적·사회적 마음 구성체란?

 

한국 역사에 있어서 주요 사상가로 평가되는 원효(통일신라), 득통(여말선초), 퇴계(조선 중기), 율곡(조선 중기), 성호(조선말) 등의 사상은 마음을 핵심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의 마음사상을 토대로 한국사회에 관한 마음사회학적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유승무 등은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마음 개념의 용례, 현대 한국사회의 마음문화, 심지어 북한사회의 마음문화까지도 마음사회학적 시각에서 논의한 바 있다(유승무, 2017, 2019; 유승무박수호신종화, 2013; 유승무박수호신종화이민정, 2014; 유승무신종화박수호, 2015, 2016, 2017a, 2017b, 2017c; 유승무최우영, 2018, 2019; 유승무최우영박수호, 2018). 이를 통해 역사의 대부분을 심탁(心託)의 종교사상인 불교와 유교가 지배해온 한국사회야말로 전형적인 마음사회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마음이 인간의 성(혹은 , )와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정(혹은 , )을 통할하고 통합한다는 의미를 지닌 퇴계의 심통성정론이 암시하듯이4), 마음사회는 마음이 인간의 사회적 삶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그 환경(인간을 포함한)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매개하거나 조절하는 사회를 지칭한다.

한편, 최근 인지과학에서 제기하는 몸을 통해 인지한 마음’(the embodied mind)5)이라는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몸은 마음의 일부이자 관문이다6). 그런데 마음에는 개개인의 내적 욕망과 개인의 대()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로서의 내 마음과 다양한 사회적 기능체계의 내적 작동과 그 체계의 대() 환경적 상호작용의 산물인 우리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마음이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 요인, 사회적 요인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인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 요인 등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사회의 사회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어떻게 인간의 삶과 사회의 작동 사이의 관계를 매개 혹은 조절하고 있는지를 파악한 다음, 그 매체들(인간의 활동기관과 사회의 구동기관)과 그들의 변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역동적 상호변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림 1>은 마음사회의 사회변동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이념형으로서 인간적·사회적 마음 구성체를 모형화한 것이다.

 

 

그림 . 인간적·사회적 마음 구성체

 

좌측에 표시된 <인간> 영역은 내적 욕망과 활동기관, 마음으로 구성된다. 개개인의 내적 욕망의 영역은 붓다가 간파한 탐(탐욕; 갈애), (성냄; 증오), (무명=이기심; 자기애)가 일상인의 세속적인 심리와 삶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욕망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욕망은 외부에서 관찰하지 못하는 내적 작동으로 생산되는 순수한 내부성을 지니고 있기에 루만이 주장하는 폐쇄체계로 간주하여 외부 환경(세계)과 구분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활동기관은 개인의 내적 욕망의 영역 외부에서 외부세계를 매개하거나 조절하는 일종의 관문(關門)으로서 행동기관인 몸, 언어기관인 입, 그리고 사고기관인 머리(두뇌)’7)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식의 영역은 이성, 감성, 기억, 상상력, 의지, 동기, 퍼스낼리티, 타자지향적인 현상학적 마음 등을 포함한다.

<사회> 영역은 사회적 기능체계와 구동기관, 집합의식으로 구성된다. 사회적 기능체계는 경제적 체계, 정치적 체계, 기타 다양한 사회적 체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루만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체계들은 자기준거적 자기재생산을 하면서 작동한다. 따라서 사회적 체계의 영역은 인간의 내적 욕망과 마찬가지로 폐쇄적 체계로 간주하여 외부 환경(인간)과 구분하였다. <사회>의 영역 속에는 당연히 각종 기능체계들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능체계를 외부환경과 연동시키는 사회의 구동기관들(, 행동기능을 수행하는 정책이나 사회운동,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매스미디어, 사고기능을 처리하는 연구 활동이나 학문)의 작동도 포함된다. 그리고 집합적 열광, 군중심리, 여론, 사회심리, 시대정신, 이데올로기 등을 포함하는 집합의식의 영역이 존재한다.

개인과 사회에 관한 도식적 이해의 토대 위에서 모든 현상을 원인과 조건에 따른 결과로 보는 연기법적 관찰에 따르면, 개인의 내적 욕망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욕망(내적 원인)은 인간의 다양한 활동기관 즉 행동기관인 몸, 언어기관인 입, 그리고 사고기관인 두뇌(머리) 등의 활동이라는 매개 조건을 거쳐 외부의 타자와 결합하거나 상호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 개개인이 타자(사회이든 인간이든)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욕망이 반영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특정한 결과를 생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개인을 외부와 연결하는 관문인 각종 활동기관의 작동 영역은 타자(여기에서는 우측 타원의 사회의 구동기관’)와의 교집합 영역을 공유하며, 이 교집합 내부의 역동성에 의해 창발되는 다중의 우연성때문에 개개인의 크고 작은 삶의 궤적, 즉 업()이 쌓이게 된다. 같은 이유로 사회의 구동기관도 개인의 작동기관과 교집합 영역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사회 영역의 일정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개인과 개인 영역의 일정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를 각각 내 마음우리 마음이라는 마음 관련 개념으로 규정하였다8).

이 모형에서 내 마음우리 마음의 교집합 영역은 서로서로가 상대의 마음 속으로 상호 침투하는 통로이자 관문의 구실을 한다. 동시에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활동기관과 사회의 구동기관 사이의 역동성을 매개로 개인의 삶과 사회의 작동을 연결시키는 매개체의 기능도 수행한다. 그리고 개인의 활동기관이나 사회의 구동기관은 상황에 따라 개인의 삶 및 사회의 작동에 홀로 혹은 복수의 결합을 통하여 자유롭게 매개 활동을 할 수도 있다9)따라서 이 교집합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동적 움직임은 사회변동의 결정적인 조건10)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의 동인이 개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기능체계의 작동으로 귀결되든 사회적 기능체계의 영역에서 시작되어 개인의 삶으로 귀결되든 간에 반드시 이 교집합 영역에 존재하는 인간의 활동기관과 사회의 구동기관 사이의 역동적 움직임이라는 조건을 거쳐 모종의 결과를 산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글에서는 이러한 마음 영역에 속하는 교집합과 그 속에서 작동하는 역동성을 사회변동이론의 결정적인 조건으로 간주할 것이며, 나아가 그렇게 관찰할 때11) 마음사회의 사회변동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12).

이상으로 우리는 마음 구성체를 인간 차원의 요소, 사회 차원의 요소, 그리고 마음 차원 및 그 매개 차원의 요소 등 요소적 층위에서 설명해 보았다. 그런데 제4장의 <그림 2>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음 구성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 사이에는 매우 복잡한 관계들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마음 구성체 모형은 마음사회의 관점에서 인간사회의 삶과 사회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마음 구성체의 요소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의 작동을 기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다양한 사회관계들의 작동을 동양사회사상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에너지, 즉 기()의 흐름을 의미한다. 결국 동양사회사상적 관점에서 마음 구성체 혹은 마음 구성체의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 기()의 흐름,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들의 작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인간의 영역, 사회의 영역, 교집합 영역, 내 마음의 영역 및 우리 마음의 영역 등 다양한 영역들 사이의 결합 및 연동에 의해 구성되는 마음 구성체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 구성체가 구성되는 원리를 법칙의 차원에서 논의하지 않을 없다13). 동양사회사상적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마음 구성체의 구성 원리인 리()나 마음 구성체의 구성 영역인 기(), 이들 사이의 연결 질서인 법() 등을 이해해야 하며, ()와 리()의 관계 혹은 법()과 의존적 발생(緣起)의 관계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 학문적 논의도 당연히 수반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제3장에서는 마음 구성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연기법에 따른 관찰의 적합성을 자세하게 논의한다. 이어지는 제4장에서는 기의 흐름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계들의 작동을 마음 구성체의 구체적인 작동과정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제5장에서는 제3장과 제4장의 논의를 종합했을 때 발생하는 쟁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유교의 리와 기의 관계 혹은 불교의 법과 발생의 관계 문제를 실천의 차원에서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

1) 루만의 사회변동이론에 대해서는 본론에서 루만의 글을 직접 인용하면서 보다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2) 매우 부끄럽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학계는 라우어가 정리한 사회변동론 교과서를 재활용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사회변동이론이라는 키워드로 선행 연구를 검색해 보면 사회이론적 심급에서 이루어진 선행 연구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한두 편의 업적조차도 라우어의 책을 모자이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3) 이에 대해서는 유승무(2010)을 비롯한 필자 등의 여러 선행연구들을 참고하라.

4)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유승무·신종화·박수호(2017c)를 보라.

5)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바렐라 외(2013)를 참고하라.

6) 마음이 몸 안에 있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은 근대 이후의 전도된 마음 구성체의 산물이다. 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7) 순수 우리말의 머리’, 머리를 써 봐란 용례에서의 머리를 의미한다.

8) 예컨대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대학가의 풍경을 회고해 보자. 당시 대학생들은 개인적으로는 올림픽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쌍팔(88)년이 되면 서울이 개판된다는 노래를 공공연히 부르며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고 있었다. 이처럼 당시 대학생들은 올림픽을 고대하는 개인적 심정과 올림픽 반대를 외치는 청년학생의 불타는 마음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이 상황을 내 마음과 달리 올림픽을 반대하는 것이 우리(전체) 마음이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러한 용례에서 드러나는 개념으로서 내 마음우리 마음을 가리킨다.

9) 4장의 <그림 2>와 관련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10) 조건적 발생론의 조건에 해당하며, 연기론의 관점에서는 연()을 의미한다.

11) 이를 관찰할 수 있는 관찰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매우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12) 이러한 모형의 이론적 함의에 대해서는 제4장에서 자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13) 대표적인 사례로 루만이 열역학 제2법칙의 원리를 원용하여 체계와 환경 사이의 구조적 연동과 체계의 복잡성 증가 혹은 감축 등을 논의한 것을 들 수 있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신대승네트워크 <트렌드&리서치센터> 대표
편집진 편지
카드뉴스

차별금지법 그게 뭔데!

- 신대승네트워크()